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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랑 Nov 08. 2021

직장에서 -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

우리의 직업에도 한 숟갈의 신성함이 존재하지 않을까?

직장에서 동료보다 뒤처지는 느낌에 퇴근길이 괴로울 때가 있다. 자신이 부족한 나머지 직장에 아무 가치를 더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땐 마음이 더 무겁다. 입사하거나 이직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면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므로 이런 감정을 더 느끼기 쉬운 것 같다. 


가장 절망적인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나가는 직장 동료를 따라잡기엔 모자르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예는 '영어 실력'이다. 클라이언트가 외국인이면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업무에 매우 큰 도움이 되는데, 한국에서 자란 필자는 나름 성실히 영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유학 경험이 있는 직장 동료의 수준에 이르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직장에서 열등감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튜브에 쳐보니(참고로 필자는 과도할 정도로 유튜브에 고민을 물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유튜버들이 하나같이 그럴수록 더 노력해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못 뛰어넘는다니까? 처음에는 자신이 분명 부족했는데 피나게 노력하니 나중엔 직장동료보다 자신이 더 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못.한.다.니.까?


무엇이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은 자기계발의 시대인 현재 도처에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점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죽을만큼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올림픽 피겨 선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엄청나게 노력하면 (그리고 운도 따라준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만약 필자가 모든 순간을 영어 공부에 매진하거나 지금이라도 유학을 다녀온다면 영어를 훨씬 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엔 다른 중요한 가치의 희생이 따르기에 필자의 직업이 통역사가 아닌 이상 그리  가치있는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딜레마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늘 내 앞사람의 등판만을 바라보면서 끝없는 트랙을 달려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왜인지 힘이 빠져버린다. 그렇다면 인생의 모든 순간과 숨을 앞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소모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따라잡아야 하는 걸까? 또 그러자니 그렇게 인생을 좌우할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열등감은 우리가 트랙에서 달리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치열한 경쟁의 장인 직장(특히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로펌이 그러하다)에서  우리는 모두 '나'란 상품이 다른 상품에 비해 어떤 강점을 가지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므로, 다른 직장 동료에 비해 자신의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 열등감을 느낀다. 


어느날 성당 주보를 보는데 신부의 화려한 이력을 설명하는 칸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옛날에 신학대를 다니며 목사직을 준비하던 친구가 자신의 강점이 좋은 목소리와 노래 실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교회의 목사나 성당의 신부는 직업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신분이라고 으례 생각했는데, 그들도 비즈니스맨처럼 자신의 경쟁력을 재단해보는 행위를 하니 그것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 문득 모든 직업이 사제직과 마찬가지로 '신이 일시적으로 부여한 신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제직처럼 신성불가침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직업에도 한 숟갈의 신성함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회에 해악을 끼치려고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나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서 직장을 선택했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고 나름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직장생활이 신성하다면 그 이유는 '나름의 미학'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잘났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름 노력해서 일을 해냈다면, 그것만으로 신의 칭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의 직업이 광화문 빌딩에서 일하는 사제라고 생각해보니 남들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오늘 일을 통해 신이 나에게 보내는 의미(축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기계발이 중요한 지금은 일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을 부지런함 보단 '게으름'의 이미지로 생각하지만, 과거 고대시대엔 오히려 여가시간을 보내지 않고 노동만 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사실 더 발전하고 싶은 부지런함 때문이 아니라 일의 진정한 의미에 집중하지 못한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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