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1. A. 글을 쓰게 된 계기: 법알못 실무자의 위험성
짤막한 자기소개
필자는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필자는 본래 200명 규모 회사의 마케팅팀 직원이었습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나름 50억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아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도 내고, 예산도 구성하고, 해외출장가서 회의도 하고, 이제는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 일만 남았습니다. 곧 보람찬 성취감을 맛볼 생각에 잠도 약간 설쳤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는 찰나 프로젝트가 전면 백지화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외국계 회사였는데, 본사가 법령 위반의 소지가 있으니 다시 검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변호사를 찾아 물어보니.. 빼박 위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왜? 도대체 왜 위법이지? 그 때의 충격은 말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는 너무나 충격받은 나머지 (충격 받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심기일전하여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겠지만)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는 대신 회사를 퇴사하고 법을 배우러 로스쿨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진로이지만 막상 와보니 의외로 법학이 적성에 맞는다는 느낌이 살포시 들었고, 그 덕분에 대형 로펌에 입사도 하고, 지금은 사내변호사가 되어 다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예전 회사는 아니고, 직원이 아닌 변호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김대리를 만났습니다.
김대리는 불안하게도.. 5년 전 해맑았던 필자의 미소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면 백지화
김대리가 서둘러 검토를 부탁했던 계약서(자칭 합의서)는 1장 짜리였습니다. 10문장 정도의 문구 끝에 계약을 체결하는 우리 회사와 상대 회사의 도장칸이 마련되어있었습니다. 도장 찍을 생각에 김대리는 그렇게 서둘렀던 것이지요.
그런데 1장 짜리 계약서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법령 위반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하루만에 검토해달라던 합의서 1장이 의견서 10장이 되어 날아오고, 속절없이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갑니다. 3개월 뒤 김대리의 프로젝트는 전면 백지화 되었습니다. 마치 예전에 제 프로젝트가 그랬던 것처럼.
도장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계약서 체결이지만
실상은 시작도 못한 셈이었던 것이지요.
때맞춘 법무검토는 선택이 아닌 필수
필자는 이런 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에 조금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김대리의 풀죽은 뒷모습을 보고는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필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전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전면 백지화 되었을 때, 그것이 마치 필자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내가 날려버릴 수가 있지?" 이런 목소리가 계속 마음 속에서 메아리쳤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졸업한 지금은 조금 다른 목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어떻게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그때서야 법무검토 할 수가 있지?"
법무검토를 조금만 더 빨리 받았다면, 그래서 거래 구조를 조금 더 안전하게 고쳤다면, 시일이 초기에 조금 더 걸리더라도, 프로젝트가 전면 백지화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되풀이되는 전면 백지화를 피하기 위해
제 때 법무검토를 받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법알못 실무자를 위한 위법 지뢰 지도
그런데 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언제 어떻게 법무검토를 요청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법을 알아야 위법을 피하거나 할텐데 법을 모르므로 위법의 테두리를 건넌 것인지 아닌지 의식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강을 건너고 위법인지 알게 되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이 너무나 방대하고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예전의 필자나 김대리를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약 실무자가 프로젝트에서 자주 문제되는 법령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톨의 의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의심 덕분에 제 때 법무검토 요청을 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김대리가 미소를 유지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법알못 프로젝트 실무자가 어떻게 위법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김대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그곳은 위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