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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랑 Jun 20. 2022

[인트로]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향하여

인트로 1. B. 글을 쓰는 목적: 좋은 질문을 남기는 것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법령정보센터(링크)에 들어가보니 대한민국의 법령이 5,839개, 행정규칙이 19,057개, 판례는 82,788개라고 나와있습니다. 아이언맨의 자비스가 실제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위 모든 법에 대해 모든 지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변호사도 모든 법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변호사도 독자분들과 마찬가지로 질문을 받으면 허겁지겁 구글 검색창을 찾아갑니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호사는 독자분들에 비해 구글이 알려주는 문서들을 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이 책도 독자 분들에게 법을 알려주진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가 원하는 목표도 아닙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글의 목적은
법에 대한 지식보단 '법에 대한 감각'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적법 VS 위법

사내변호사로 일하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제가 ~라는 프로젝트를 해볼 생각인데, 이게 대한민국 법령상 적법할까요?"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우주와 같은 아득함을 느낍니다. 독자분들은 이 질문의 문제점이 느껴지시는지요?


"이게 대한민국 A법 B조상 위법일까요?"라는 질문은 조금 쉽습니다. A법 B조에서 출발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법령상 적법할까요?" 글자수는 더 적은 이 심플하고 요망한 질문은 훨씬 답하기 어렵고 잔인합니다. 적법하다고 말하려면 대한민국 법령 5,839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공을 허공 500m로 쏘아올린 뒤 눈을 가린 채 총을 갈겨서 맞춰보는 것과 유사합니다. 


아마 이런 질문을 던지면 변호사는 난색을 표하다 어떻게든 위법의 근거를 찾아서 독자의 프로젝트가 위법하다고 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법령을 살펴보는 동안 분노의 이를 갈아서도 있겠지만, 무언가 (위법하다고 말하긴 쉬워도) 적법하다고 말하는 것은 혹시 다른 법령을 놓쳤나하는 불안한 마음에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체적이면서 핵심적인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변호사로부터 양질의 답변을 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좋은 질문은 
적법을 희망하는 질문이 아니라 
"위법을 의심하는 질문"입니다.


어?
개발자 사무실 금지어로 유행했던 밈, 그치만 법무에선 가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질문이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어? 이래도 되나?" 수준의 질문이면 충분합니다. 


리걸마인드(Legal Mind)


법조계에 우스개소리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리걸마인드'입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데 필요한 사고의 과정'이라고 나오네요(링크). 


누구는 리걸마인드가 우수한 법학 교육을 통해 갖추게 되는 변호사의 소양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리걸마인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리갈마인드에 대해 믿고 있는 것은, 리걸마인드는 변호사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법에 대한 감각', 즉 '리걸마인드'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느끼게 될 감정을 좀 더 잘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프로젝트를 실행했을 때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보세요. 그 사람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한다면 그 프로젝트를 약간은 의심해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고장난 물건을 받아도 환불할 수 없게 되는데, 괜찮나?" 소비자들이 화가 나겠죠. 법은 소비자를 보호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도급사가 재료를 잔뜩 산 다음에 그 재료를 써보지도 못한채 버리게 되는데, 괜찮나?" 하도급사가 화가 나겠죠. 법은 하도급사를 보호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칠 여파를 상상해보고, 그 사람들이 나에게 화난 채 전화를 걸어올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습관을 가진다면, 위법을 의심하는 태도 - 즉 법에 대한 감각을 갖출 준비는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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