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경남본부를 떠나며
2016년 몹시 추웠던 날 KTX를 타고 창원으로 왔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던 아내와 돌이 막지 난 아들과 인사를 한 후였다. 아내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했고,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2년간의 창원살이가 시작되었다.
월요일 새벽 창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면, 잠귀가 밝은 첫째 녀석이 일어나 울기 시작한다. 익숙해질 때도 됐으련만 여전히 아빠가 가는 게 싫은가 보다. 주말에 좀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금요일이 되면 꼭 일찍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오빠가 울거나 말거나 한참 꿈나라인 잠보 둘째 녀석과 선잠에 깨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리며 배웅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그렇게 매주 창원과 서울을 왕복했다.
스무 살 때 군입대를 위한 신검을 받으러 병무청에 잠깐 들렀던 게 전부였던 창원에서 2년이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남본부 근무를 명함’이라 적힌 인사발령지를 받기 전까지 창원은 사회과 부도 교과서 속 수많은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곳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 ‘어떤’ 도시였다.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자의 마음은 대게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막막함과 두려움 그리고 어쨌거나 새로운 곳에서 살아 볼 좋은 기회를 맞이하는 두근거림이 섞여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그렇게 시작한 창원에서 2년 살기가 끝나간다. 이제 처음의 두근거림은 없다. 대신 그 공간은 소중한 기억과 추억으로 가득 차있다.
창원은 73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의해 탄생한 계획도시다. 농촌지역이었던 창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창원은 인구가 100만이 넘고, 도청, 검찰청, 법원 등 각종 공공기관이 밀집해있으며, 자주포와 전차를 생산하는 군수업체도 있는 대도시가 되었다.
창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을 꼽으라면 상남동과 시티세븐 몰이다. 백화점과 마트 그리고 5일장이 열리는 재래시장이 함께 있는 상남동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은 창원의 대표적 번화가이다. 시티세븐 몰은 상남동보다 좀 더 세련된 곳이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급호텔과 영화관, 쇼핑몰, 마트, 면세점, 식당이 모두 모여 있다. 이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43층에 있는 카페다. 거의 유일한 고층건물인 이곳에서 쭉쭉 뻗은 도로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뿜어내는 야경을 내려다보는 건 서울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다. 게다가 여기 커피는 저렴한 데다 아주 맛있다.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도 많다. 도시 곳곳에 스포츠센터가 있어 저렴하게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창원실내수영장은 제14회 부산아시아게임 경기장으로 사용된 국제규격의 수영장으로 일반 수영강습뿐만 아니라 다이빙 강습도 받을 수 있다.
도서관도 많다. 숙소 근처에 ‘고향의 봄’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도서관이 있다. 창원에서 자란 이원수 시인의 대표작에서 딴 이름이다. 저녁을 먹고 하늘이 거무스름해지면 가끔 도서관으로 향한다. 2년 동안 일본어를 배워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도서관이 제법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웬만큼 먹었다간 중간에 옆길로 새 버리는 일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아주 오래된 중고차를 하나 샀는데, 이 차가 창원 생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효자 노릇을 해주었다. 이 차로 참으로 많은 곳을 여행했다. 창원의 봄은 온통 벚꽃이다. 군항제 기간에는 왕벚꽃이 만발한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를 돌아볼 수 있다.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는 해군기지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군함을 타고 벚꽃이 만개한 항구를 내다보는 경험은 군항제에서만 가능하다.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들 때쯤이면 주남저수지에도 꼭 들러보아야 한다. 멀고 먼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피해 날아온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고, 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이밖에도 조금 멀리 눈을 돌리면 남쪽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좋은 산과 사찰들이 즐비하다. 날씨 좋은 여름날 통영음악당에서 본 파란 바다의 파도소리와 합천 해인사의 푸르른 숲과 어우러진 풍경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역본부는 사람이 적다. 더욱이 비슷한 나이 또래는 더 적은 데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서로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된다. 비슷한 고민은 나누어 해결하고, 부족한 점은 도와준다. 생일날 같이 모여 촛불을 불고, 같은 팀을 응원하는 동료와 퇴근 후 마산야구장에서 목청 높여 응원하며 즐거워했다. 쾌속선을 타고 대마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며 면세품을 한 보따리 사오기도 했다. 넉살 좋은 후배 녀석은 서울에서 동기들을 초대하더니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사람이다. 처음 경남본부로 발령받았을 때 내가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현지에 계신 분들도 느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올 것이며, 그로 인해 삶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제 정들었던 지역본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아껴두다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며, 미루어두었다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쉽다.
내가 있었던 2년 동안 경남본부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5년간 중단되었던 화폐수급업무가 재개되었다. 덕분에 나도 기획조사팀에서 업무팀으로 옮겨 발권업무를 해볼 수 있었다. 열심히 푸드덕 거렸음에도 익숙지 못해 허둥거렸던 나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지역본부는 한국은행의 작은 축소판이었다. 경남본부가 존재하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2년 동안 충분히 즐기고 충분히 행복했다.
이제 곧 가족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다음 달부터는 아침에 아빠랑 같이 어린이집을 갈 수 있다고 신나 하는 아들을 보니 창원에서의 2년이 정말 끝나감이 실감난다.
※ 이 글은 한은소식 2월호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