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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Feb 21. 2022

부부는 한 팀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해야 할 때

 결혼하기 전에는 오빠랑 빨리 합법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매일 함께 있고 싶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게 되고 같이 살면서 오빠는 남편으로서 더욱 든든한 존재였고, 난 그런 오빠를 여전히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삶이 너무 달라져버렸다. 갑자기 삶이 너무 고단해져 버렸다. 아이라는 존재가 너무 신비롭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한정적이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집안도 엉망, 육아도 엉망, 우리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 생겼다.

 꼴 보기 싫다

 내가 사랑하는 내 남편이 꼴 보기 싫다니! 이런 나 자신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루 종일 육아하다가 힘들게 설거지하고 있는데 남편이 저기 드러누워서 핸드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당장 가서 저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감정이 몰려온다.

 새벽에 잠투정하느라 계속 아기가 울고 있는데 얼굴 한 번 안 내밀 어보는 남편이 너무 야속하다. 통잠을 도통 자지 않는 아기 때문에 나는 밤을 새우고 이제 겨우 아침이 다 되어 아이를 재웠는데, 혼자서 밤새 푹 자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일 있었어?'라는 천진한 얼굴로 일어나 나오는 남편 때문에 내 소중한 잠이 깨버리면.. 정말 죽빵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도 좀 쉬고 싶은데, 자기는 주말에는 낮잠을 자야 한다며 꾸역꾸역 낮잠 자러 홀라당 들어가 버리는 남편을 보면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너무 적나라한가. 그냥 상상입니다 상상..)


 아이들이 이제 5살 4살이 되었는데 둘째는 12월생이라 이제 말을 좀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예전처럼 멋도 모르고 위험한 사고(아무거나 주워 먹는다거나, 아무 데나 박고 다닌다거나 하는 위험한 행동)를 치는 일은 줄었지만, 둘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다치는 일이 많다. 말이 안 통해서 무조건 떼쓰고 달래지지가 않는 그런 시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자기 맘대로 안되면 울고 불고 소리 지르고 할 거 다 한다. 이런 아들 둘과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어떨 때는 '이제 많이 컸네' 싶다가도 '아휴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하다.


 매일 야근하는 남편은 집에 오면 쉬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는 집에 있어본 적이 없는 남편은 집에서의 휴식이라곤 오로지 아이들 잘 때뿐이다. 나는 하루 종일 일 하고, 아이들 하원 시켜서 밥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나 혼자 다 하는데 심지어 재우는 것도 나 혼자 다 한다. 쉬고 싶고, 피곤하고 지친 마음은 둘 다 마찬가지다. 쉬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육아의 연수가 더해질수록 우리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긴 했다. 주말 육아를 할 때 남편은 오후에 한 번 꼭 낮잠을 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TV 보는 시간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한두 시간 카페에 가서 리프레시하고 들어온다. 각자의 방식으로 쉰다.

 나는 남편이 꼬박꼬박 낮잠을 자고, 매일 게임을 돌려놓고, 집안일은 거의 손에도 안 대는 게 마음에 안 들지. 남편은 내가 틈만 나면 카페로 튀어 나가려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고, 가끔 짜증스러운 말투를 하는 걸 마음에 안 들어하지.

 그래도 나는 남편의 낮잠 시간을 존중해주고, 남편은 나의 카페 타임을 지켜준다. 가끔 서로에게 특별한 외출 시간을 허락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은 육아가 중심이기 때문에 이렇게 서로 팀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또 서로에게 날이 서있으면 삶이 너무 팍팍해진다. 작은 배려가 있으면 하루를 좀 더 기분 좋게, 좀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무엇 때문인지 저녁에 설거지할 시간도 없이 보내다가 아이들을 밤늦게 재워놓고 나와서 달그닥달그닥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마 밤 11시 반쯤. 다음 날이 주말이어서였을까. 남편이 빼꼼 나와서는 한 마디 했다.

 내일 아침에 내가 할게. 그냥 자~

 와, 나 이 한 마디에 너무 감동받아서 울컥했다. 남편은 스스로 먼저 '내가 할게'라고 하는 법이 거의 없는 편이다. 내가 부탁하거나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 곧잘 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먼저 하는 일은 잘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정도에 감동해도 되는 걸까.

 결국 그날 설거지는 내가 다 했다. 내가 하고 싶었다. 그 말 한마디가 너무 고마워서 그냥 내가 다 했다. 살아갈수록 느끼지만 부부 사이라는 게 참 소소한 것이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감동받고. 작은 배려나, 그런 태도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한다. 서로를 더 좋아하게 하고, '나 이 정도면 결혼 잘했네' 하고 안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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