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예전에 친정 엄마와 함께 제주도에서 먹었던 방어회가 생각난다. 그때가 아마도 10년 전이었을 것이다.
갓 잡은 엄청난 크기의 방어 한 마리를 긴 밥상 위에 벌여놓고 조금씩 포를 떠 간장에 찍어 먹던 그날의 밤.
늘 회를 접하던 내게 그날의 방어회는 그 어떤 회맛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입안의 감각을 흔들어 놨다.
특히 방어의 그 쫄깃하고 탱탱한 살을 잔파를 가득 썰어놓은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란...
그것은 고추냉이나 된장... 초고추장에 찍어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별미였다.
엄마와 나는 찬바람이 몰아치던 우도의 겨울 초저녁. 친척 집에서 방어회를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집에 오니 체중이 2킬로나 불어 있었다.
그때 먹었던 방어는 살에 붉은 기가 많고 기름진 맛이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날의 기름진 방어맛이 입안에 맴돈다.
며칠 전부터 길을 걸을 때면, 횟집마다 방어회를 판다는 종이가 붙어 있길래 딸에게도 방어회 맛을 보여주고 싶어 어제는 가까운 횟집에 갔다. 바닷가에서 주로 살았던 나는 늘 싱싱한 회를 먹어왔으므로
그다지 이곳의(내륙지역) 횟집에는 기대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처음 가는 횟집. 저녁시간인데도 식당이 텅 비었다. 맛집이면 사람들이 북적댈 텐데... 잘못 들어온 걸까..
방어회는 2인분에 5만 원이었다. 매운탕과 밥은 따로 계산이다.
회를 기다리는 동안 음식이 나왔는데 (보기에도 신선하지 않아 기대를 접는다) 멍게와 번데기. 삶은 땅콩이다. 멍게는 너무 오래된 듯 푹 퍼져서 신선하지 않고 땅콩도 냉장고에서 갓 나온 듯 너무 차갑다. (오늘같이 추운 저녁에...)
드디어 작은 접시에 방어회가 나왔다. 채 썬 무 위에 회를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접시에 담겨왔다.
솔직한 회 한 접시였으나 양이 턱없이 작아 보인다. 크기가 작은 방어인가 보다.
나는 두어 점 먹고는 젓가락은 놓는다. 예전에 먹었던 그 방어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갓 잡은 신선한 방어맛을 모르는 딸은 잘 먹는다. 상추에 싸서.
나중에 매운탕이 나왔는데 산초향이 강하고 얼큰해서 내 입맛에 잘 맞았다.(그나마 다행)
방어회를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입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우린 사탕을 하나씩 물었다.
길을 걸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서 사라진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 옆에서 방어회를 먹을 때 눈짓으로 '너무 맛있지?' 하는 눈빛을 수시로 보냈던 나의 엄마.
내가 방어회 한 점을 오물거리면서 행복한 미간을 찌푸릴 때 엄마도 입안에 방어회를 가득 담고 웃어주었다.
엄만 자식이 행복해할 때 가장 행복해했던 분이다.
2023년 여름(그 여름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름이 되고 말았다) 회를 사서 우리 집까지 가지고 오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딸이 회를 먹고 싶어 하는 때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모든 추억은 먹었던 음식과 함께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곳에는 늘 맛있는 음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