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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의 책놀이터 Dec 16. 2016

[서평] 노인들이 "죽고 싶다"는 사회를 아십니까?

- NHK스페셜 제작팀 저,김정환 역, 『노후파산』, 다산북스, 2016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시대의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딱 대중이 생각하고 원하는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죠. 요새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나이 먹음에 대한 조롱'입니다. 어린 아이돌을 데려다 나이가 두 배쯤 많은 사람을 공격하고 면박주는 식으로 웃음을 유도하더군요. 우리 사회가 나이먹음, 즉 늙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약해짐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정신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취약해집니다. 노인이 여성,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배려와 양보의 대상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헌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7명인데(OECD 평균 12명),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8.3명(OECD 주요 27개국 평균 22.2명)으로 4배에 가깝습니다. 심각한 수준입니다. '늙음'이 방송으로 웃고 떠들만큼 가벼운 소재는 아닌 겁니다.


이전에 『황혼길 서러워라』는 책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노인문제의 실태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인구고령화율이 심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NHK 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와 상황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을 참고한다면 우리나라 노인문제, 특히 노인빈곤문제를 해결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노후파산'은 은퇴하여 연금이나 그동안 비축한 예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어떻게 궁지에 몰려가는가를 취재한 기록입니다. 다양한 실제사례와 당사자들의 발언을 볼 수 있지요. 여러 케이스가 소개돼 있으나 이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은퇴한다(해고된다) ☞ 2. 연금이나 예금으로 생활을 유지한다 ☞ 3. 갑자기 큰 병이나 장애를 얻어 거동이 불편해지고 의료비 지출이 증가한다 ☞ 4. 연금이나 저축으로는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다


크게 보자면 이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노후파산의 몰락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여기에 각 사안의 특수성이 조금씩 개입되는 정도가 차이날 뿐입니다. 가족이나 친지, 생활보호제도도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굴러떨어지는 사태를 막지 못했습니다. 고립된 노인들은 생의 의지를 잃은채 고립돼 있습니다.



예금도 조금밖에 없는, 이름바 노후파산 직전의 상황에 있는 고령자의 대부분은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정신적으로 몰려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의 외침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격려도 위로도 하지 못하고 그더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든다.
- NHK 스페셜 제작팀 저, 김정환 역,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다산북스, 2016, 48p.


유엔의 기준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7%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인구일 경우 고령화 사회, 14%이상일 경우 고령사회, 20%이상일 경우 초고령화 사회로 구분합니다. 국민안전처는 내년부터 한국이 고령사회(전체인구 중 고령인구 14%이상)로 진입할 것이고, 2026년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전체인구의 25%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인구라고 알려져 있지요. 당장 독거노인의 수가 600만명인데 이 중 절반인 300만명이 빈곤상태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즉, 전체국민 중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노후파산의 과정에 있거나 노후파산 예비군인 것입니다.


헌데 그에 대한 대비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개인의 책임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 풍조가 판을 치면서 노후의 문제 역시 개인에게 내맡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을 계속하던 당시는 성실하게 일하면 보답을 받는 사회였다. 그렇기에 성실하게 일하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노후를 손에 얻을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

그러나 초고령 사회가 도래하고 핵가족화가 진행되자 일본사회는 격변기에 돌입했다. 독거 고령자가 수백만 명 단위로 급증하자 가족이 버팀목이 되어줄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사회 보장 제도는 기능 부전을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노후파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이 확산되었다.
- NHK 스페셜 제작팀 저, 김정환 역,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다산북스, 2016, 78p.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꿈꿨던 일본인들은 은퇴 후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병이 생기거나 장애가 생겨 거동이 불가능해지면서부터지요. 연금이나 예금은 고스란히 의료비와 돌봄서비스비용으로 탕진되고, 하루 식비 1,000원 이하로 배곯으며 비참하게 사는 처지가 됩니다. 믿었던 가족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친지에 의해 성년후견인 지정을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낡은 집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제도의 자격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나라경제를 재건하며 건실하게 일한 이들에겐 너무 가혹합니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노후 생활, 쾌적한 노후 생활은 '돈'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부담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고령자는 적다. 그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NHK 스페셜 제작팀 저, 김정환 역,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다산북스, 2016, 111p.


결국 돈 없는 노후생활이란 것은 끔찍한 악몽과 같습니다. NHK가 취재한 한 노인이 "가난뱅이는 죽으라는 건가..."라고 분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주 성공하여 많은 부를 축적한 소수의 노인을 제외한 대다수 노인은 결국 길어진 은퇴후 삶에서 파산에 이르고 맙니다. 늙고 병든 몸으로 노동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비참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요.


한 편,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유대의 부재도 큰 문제입니다. 질병과 장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가족관계나 친척관계, 친구관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도 매우 외롭고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지요. 취재에 응한 한 노인은 창 밖 나무나 새들과 혼잣말로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단절과 고립의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잠시 대화할 기회가 생기자 놓아주지 않고 말씀을 이어가던 한 어르신이 떠올라서 울컥하네요.


마지막으로 세대를 이어지고 있는 노후파산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80대인 노부모에게 50대의 자식들이 의지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불황기와 고용불안정 시기를 살아온 자식세대는 그나마 자가주택을 소유하지도 못했고, 연금마저 꾸준히 적립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고령화되며 서서히 노동시장에서 축출되자 결국 노부모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미 얼마 안되는 연금과 예금으로 노후파산의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노부모, 경제적으로 그보다 못한 자식의 동거는 둘 모두의 파멸을 초래하고 맙니다.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자식세대의 등장'이란 화두가 한창인 한국에서 조만간 벌어질 풍경들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자식이 공멸하는 새로운 노후파산이 잇따르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그중 하나는 '고용'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가 흔들리면서 미래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또한 '가족'의 형태가 변하면서 서로를 지탱하는 힘(유대)이 약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리라. 사회 보장 제도가 이런 '초고령 사회'의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가속시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고령자를 뒷받침해야 할 일하는 세대가 취약해진 것도 노후파산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는 측면에 대해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
- NHK 스페셜 제작팀 저, 김정환 역,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다산북스, 2016, 306p.


몸의 어느 한 부위를 다쳐보신 적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발목을 삐었다고 해봅시다. 그런 경우 아픈 발목을 쩔뚝거리게 되는데, 서서히 다치지 않은 반대쪽 발목이나 허리에도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쪽으로 대체하면서 그곳에 무리가 가기 때문입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사회의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지요. 자식세대가 무너진다면, 반대로 부모세대가 무너진다면 서로가 무사할 수 없습니다.  세대가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관계를 맺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말입니다. 대책을 논하기 전에 세대간 이해와 관용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인세대가 "요즘 젊은 것들은 배가 불러서"라고 타박하고, 젊은 세대가 "저 나이 먹도록 뭘 했길래"라 냉소한다면 희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대 상호간에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와 지금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관용이 없다면 서로를 증오하고 차별하기 밖에 더 있겠습니까. 당연히 사회적 타협이나 정치적 해법모색도 불가능할 것이구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며 살았지만 노후에 와서 내팽겨쳐진 노인 세대,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자 고용불안정과 경제불황의 늪에 빠져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젊은 세대는 서로 의지하는 양 발목과 같습니다. 서로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야만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걷기 힘든 지금 사회모습은 계속될 것입니다. 망해도 같이 망하고 살아도 같이 살겠지요.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그렇게 생겨있는 겁니다. 제가 경솔하고 무책임한 세대론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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