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량의 책놀이터 Aug 05. 2017

[서평]조상찾기가 아닌 날 찾기 위한 여행 안내서

- 이상희, 윤신영 지음,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짐승들을 많이 관찰해 봅니다. 마당에서 크고 있는 개와 고양이부터 닭, 돼지, 소 등 인간이 자신의 목적에 맞춰 길들인 그 동물들 말입니다. 보통 동물들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아서 그들의 생生부터 사死까지 모두를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어디쯤 있을 번식활동도 관찰할 수 있지요. 생명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한 인간으로서 그저 신비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서 대를 잇고 그 자신은 수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이지만, 인간은 한가지 면에서는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 그 위의 조상이 누군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하려 한다는 점이지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분명히 윗세대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간, 이 곳에 존재하여 쓰고 읽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족보가 있는 분이라면 윗세대의 누군가가 이름이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한 인물인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족보의 최상층에 있는 시조의 위에는 누가 있을까요? 보통 귀찮거나 흥미가 없어서 생각해 보지 않으신 분이 많으실텐데요. 제가 뼈대를 중요시 하는 어느 분께 이런 질문을 하니 굉장히 당황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조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소속에 대한 자부심과 그렇게 학습된 인식과 행동에 기인했을 뿐, 그 이상으로 탐구할만한 의지나 호기심은 없던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드릴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한 분과는 반대로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지고 인간의 지식과 인식의 지평이 닿지 않는 곳을 탐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분에게 흥미있을 내용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인류의 기원』이라는 제목만 봐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고양이와 개, 소, 말, 돼지, 그리고 닭 등 수많은 생명이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스스로인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인간의 기원에 대한 탐구는 그 무엇도 아닌, 나 스스로自我에 대한 고찰이며 사색입니다. 물론 뭔가 단서를 찾거나 답을 구한다 하더라도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밥이 나오거나 떡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알쓸신잡이라고나 할까요?


저자를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주저자인 이상희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으로 인류의 기원과 진화과정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 온 학자입니다.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윤신영 기자는  『과학동아』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상희 교수와는  『과학동아』의 칼럼을 게재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과학관련 교양서를 몇 권 쓰기도 한 실력있는 기자지요. 책과 저자들에 대한 소개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자, 우리집 족보의 맨 위에 있는 시조 이전의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아득한 과거일테지요. 그렇다고 당장 '당신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요'라고 말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오늘은 과거를 살았던 인류에 대해 밝혀진 바를 알아보고 우리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참입니다. 


요즘 같이 폭염이 계속되면 짐승들도 난산으로 죽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람이라고 별 수는 없습니다. 지인의 아내가 지난 해 8월에 출산을 했는데 '정말 죽다가 살았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하더군요. 생각해보면, 자연분만을 할 경우 인간 태아의 머리는 너무 큽니다. 어머니의 골반을 헤집고 나와야 하는데 그 크기에 맞먹거나 더 큰 태아의 두개골 사이즈 때문에 산모들은 큰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400만~5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는 여러모로 유인원처럼 생겼습니다. 머리 크기도 침팬지 머리 크기와 비슷한 450시시(cc)정도였죠. 단지 직립 보행을 했다는 점만 달랐습니다.

그 후 인류의 머리 크기는 점점 커져서 200만 년 전에는 약 2배인 900시시에 다다르고 그 후 10만 년 전에는 현재 우리의 머리 크기와 비슷한 1300시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 크기는 200만 년 전 이후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요.
- 이상희, 윤신영 지음,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122p


그렇습니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뇌용량이 증가하고 두개골이 커지면서 지능은 발달했지만 그에 따른 출산의 진화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지요. 물론 여성의 골반이 인간의 두개골이 커진만큼 커졌다면 출산의 고통은 덜해졌겠다만, 그랬다면 아마 오늘날의 여성들은 아마 어그적어그적 걸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골반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이상으로 넓어졌다면 두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테니 아마 선택을 해야 했을 겁니다. 적당한 골반 사이즈로 안정적인 보행을 할 것이냐, 골반을 넓혀서 출산을 안정적으로 할 것이냐? 진화의 경로는 아마 전자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여성들이 자연분만을 할 때 큰 고통을 감내하게 되었지요. 진화의 결과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내린 형벌인 셈이 된 것입니다.


인류의 기원이라니까 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분들에게 조금 흥미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유독 나이에 대한 의식이 강한데요.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어서...'나 '내 나이가 몇인데...' 같은 말을 상투적으로 합니다. 그런 말들 중 하나가 '나이 먹으니까 머리가 굳어서...'입니다. 머리가 찰흙도 아닌데 왜 자꾸 굳는다는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지요. 『인류의 기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어린 시절에 하기 쉬운 일과 노년에 하기 쉬운 일은 각기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단순 암기는 어렸을 때가 훨씬 더 쉽습니다. 반면 정보를 모으고 연결, 종합해서 조금 더 고차원적인 정보로 만드는 일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쉽습니다. 뇌세포의 차이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 시절부터 성정하는 내내 뇌세포를 만들어 냅니다. 뇌세포가 늘어나니 정보도 쉽게 쌓지요. 그런데 6~7살이 되면 이미 머리 크기가 어른의 80~90퍼센트에 이릅니다. 그 이후로는 새로운 뇌세포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새로운 정보 역시 어린 시절보다는 받아들이기 힘들어집니다.
- 이상희, 윤신영 지음,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5, 358~359pp


나이를 먹으면 암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중년이나 노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해내는 학자나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반증을 보자면, 자신의 머리가 굳었다는 말을 하는 분들은 사실 스스로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를 나이에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는 암기력으로 승부하는 시험이나 업무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분석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과 그런 능력을 요구하는 업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중년이나 노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일테지요. 그런데 불과 20대 중후반만 되어도 '내 나이가~'라며 잠자고 있는 자신의 능력을 모른채 지내는 분들이 많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과학이 객관적으로 말하고 전하는 메시지는 '당신의 능력은 아직 많이 잠든채 있으니 의지를 가지고 그 능력을 깨워내세요'였습니다.


『인류의 기원』에는 인간의 진화와 역사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과학교양서라서 그리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전문가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인류학이 어떻게 인간의 기원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단순히 어떤 발견과 사실의 나열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나의 몸에 새겨진 인류의 역사를 이해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출산과 학습능력에 관한 사실들도 사실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니까요.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가 노래한 것처럼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아야 예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비롯한 사람 일반에 대해 그렇습니다. 성별, 피부색, 출신지역, 장애, 성정체성 등 각종 이류를 들어 혐오를 일삼는 자들에게 결핍된 것이 바로 이런 관심과 사랑입니다. 타인을 향한 관심은 결국 그들과 같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인류학이라는 과학의 시각을 통해 바라본 나와 타인,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은 결국 스스로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나태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법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남자라서 모르고 사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