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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고 May 19. 2021

순이 : 두번째 이야기

세상 가장 애증 하는 그녀를 기억하며

그곳을 떠나 무작정 도착한 곳은 일자리가 많다는 서울 어딘가. 먼지 가득한 닭장 같은 곳이라도 이 한 몸 받아줄 곳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던 순이는 기숙사가 있는 미싱 공장에 취업했다.


악바리 같은 성격, 글도 모르는 문외한, 내세울 건 자존심밖에 없었던 순이는 여러 또래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엄마가 있잖아, 그래도 너는 초등학교라도 나왔잖아, 그래도 너는 형제라도 있잖아, 하는 생각들로 누군가를 가까이하기가 어려웠다.


따돌릴 테면 따돌려라 나는 나 대로 살란다 마음먹고 따돌리든지 말든지 낮에는 손에 바늘이 박혀 피를 쏟아도 미싱을 돌렸고 밤에는 모두를 위한 밥을 하고, 모두를 위해 청소를 했다. 그런 거라면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해오던, 순이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으니까.


꽃다운 청춘, 젊음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남자를 소개해준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으나 꼬일 데로 꼬인 성격에 나보다 더 잘난 남자는 만나기 힘들었고, 나보다 못난 사람은 더더욱이 싫은 순이였다. 남자를 소개해준다는 공장 급식 조리원 아줌마의 호의를 거절했다가 수개월 밥을 못 받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순이는 그때 성격을 조금 굽히고 더 잘난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고. 그냥 평생을 나 죽었소 하고 살아도 그게 더 나은 인생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고, 또래에선 따돌림을 당했고, 인생을 즐기며 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월급에, 기숙사 안에 꽁꽁 숨겨둔 비상금을 도둑맞기도 하는 등 지랄 맞은 기억이지만 지금 와서도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 한 명 있다 했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언니. 당시에는 나이를 속이는 사람도 많았고 다 거기서 거기의 삶을 살아온 애들이 모인 곳이라 진짜 '언니'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순이는 그 사람을 언니라 불렀다. 그 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순이에게 글자를 알려줬다. 쉬는 시간을 쪼개 기역, 니은, 디귿을 알려주었고 쓰는 법과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해 배우는 것을 갈망했던 순이는 그 순간을 즐겼고, 금새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가르치는 재미로 꾸준히 글을 알려줬던 언니는 순이에게 나중에 검정고시라도 따라고 일러주었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니 물론 세상의 벽에 수없이 부딪히고 좌절한 결과겠지만, 순이는 그로부터 한 25년 후 검정고시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순이는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졸업장을 따낼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등 수학 방정식과 영어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순이는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탓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문 앞에서 쫓겨나기도 하지만,

이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자신이 평생에 가질 수 없는 것이라 포기라도 한 듯. 다시는 나 이 나이에라도 학교 갈까?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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