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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고 Aug 29. 2019

‘필름 느와르’ 장르로 분석한 영화 <달콤한 인생>

빛을 비추면 어딘가엔 그림자가 진다

필름 느와르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주제와 명암대비가 강한 어두운 시각 스타일을 갖고 있으며 사회의 비인간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 장르’로 정의된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은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주제’와 ‘명암대비가 강한 어두운 시각 스타일’, ‘사회의 비인간적 측면’의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필름 느와르’ 장르이다.




[공식]


<달콤한 인생>의 느와르적 공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느와르는 뚜렷한 서사 공식을 가지기보다는 오히려 스타일로 묶인 장르이므로 <달콤한 인생>의 서사 구조가 완벽히 느와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강의시간에 배운 느와르의 공식과는 거의 동일하다. 우선 김실장이라는 개인적으로 일하는 남성이 주인공이며, 묘령의 여인을 통해 조직에서 배척되는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복수를 하고 자신도 죽으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처음에는 ‘두목의 여자를 마음에 품어서’ 일어난 사건이, 나중에는 ‘조직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없어도 오야가 화가 나면 잘못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회장의 대사로 인해 모호한 사건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인 뚜렷했던 사건이 거대 사회의 모순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느와르의 서사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영향을 받아 권선징악의 도덕률을 따르지 않고 주인공이나 피해자가 처단을 당하기도 한다’는 조건도 충족한다. 물론 폭력배들을 악의 무리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 내에서 굳이 악의 존재를 꼽자면 회장과 만나면서 젊은 남자와 바람을 핀 문희수야말로 악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악의 무리였던 폭력배들과 불법 총 판매자 등은 결말에 죽음으로 처단되지만 반면 김실장과 회장의 사이에 불화를 가지고 온 악의 존재 희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이후에도 ‘잘 살아갈’ 결말을 갖는다.

그리고 ‘악의 존재가 계속되는 결말을 갖는다’는 조건도 성립한다. 처음에는 바람을 핀 희수도, 폭력배의 두목인 회장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백사장의 부하도, 그 편에 있는 청소부 아줌마도, 백사장도, 심지어 ‘선’의 편에 서있던 주인공도 악이 된다. 그래서 ‘총 판매 조직의 아는 동생’(총 동생)은 주인공에게 복수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비록 결말에서 모든 악이 처단된 것 같지만 또 다시 모두는 악의 근원이 된다. 예를 들어 회장의 아내에게 희수는 악이며, 백사장 부하의 가족들에게 ‘총 동생’은 또 다시 악이 될 것이다. 악이 계속되는 것도 사회의 모순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주인공은 사건을 해결했다고 '믿고' 죽었지만, 결국 거대 사회의 모순적 문제는 여전하고 그 안에서 인간은 달콤하지 못한 삶을 운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관습]


<달콤한 인생>에서는 느와르적인 관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관습은 1 대 다수의 결투씬이다. 갱스터라면 조직과 조직의 다수 대 다수의 결투씬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와르가 갱스터와 다른 가장 큰 요소는 ‘같이’가 아닌 ‘혼자’라는 점이고,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희수와의 사건 이후 난폭 운전 양아치 3명을 혼자 때려눕히는 장면과 문실장과 그 무리를 모두 때려눕히고 유유히 도망치는 1 대 다수의 결투씬일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희수를 봤을 때 슬로우모션으로 목선에 주목하는 장면 등은 팜므파탈에게 빠지게 되는 관습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말에서 희수에게 전화 후 아무 말도 없이 “여보세요?”를 들으며 죽어가는 장면 또한 주인공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부각시키는 관습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비가내리는 날에 조직에서 배척당해 손이 부러지고 진흙 속에 생매장 당하는 것도 관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지하주차장에서의 적과의 만남 또한 느와르적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폴슈레이더는 느와르의 반복적 테크닉으로 ‘낭만적인 내레이션에 대한 애착’이란 특징을 꼽고 있는데, 그러므로 처음과 끝에 나오는 낭만적인 내레이션씬 또한 느와르의 관습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도상]


도상은 장르의 요소 중 가장 작은 요소이다. <달콤한 인생>에 포함되어 있는 느와르적 요소들 중에 가장 작은 것들로는 ‘양복’과 그로인한 검정과 하양의 ‘높은 대비’, 복수의 중요한 도구가 되는 ‘총’, 주인공이 ‘빛을 등지는’ 장면들, ‘인물보다 더 밝은 배경’, 언제나 얼굴 반쪽은 ‘그림자’ 지어져 있는 인물들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물들은 항상 ‘담배’를 물고 있으며, 사건이 일어나는 날은 대부분이 ‘밤’이고, ‘비’가 내린다. 뿐만 아니라 건물들은 언제나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축축’해 보인다.

도상 중에서도 조명에 대해 더 말하자면, 인물과 배경에 같은 비중, 혹은 배경에 더 높은 비중으로 조명을 가하면서 ‘복잡한 서사구조의 전달’, ‘서로 유기적인 작용을 하는 피사체들의 관계를 표현’해냈고, 또는 깊은 심도를 통해 ‘상황의 아이러니함’과 ‘공포감을 강조’해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결론에서 더 논해보고자 한다.


[폴슈레이더, ‘느와르의 7가지 반복적 테크닉’]


폴슈레이더가 주장한 필름 느와르의 7가지 반복적 테크닉의 특징을 <달콤한 인생>은 대부분 충족한다. 비록 ‘복잡한 시간 배열이 미래의 절망과 잃어버린 시간을 강조’하는 모습은 텍스트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구도상의 긴장이 신체 활동보다 선호’되는 모습은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이 집에 가만히 누워 스탠드를 껐다 켰다 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단지 카메라 구도상의 긴장만으로 관객들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느와르는 사회의 비인간적 측면, 인간의 불안한 심리와 대도시의 소외감을 그려낸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은 느와르적 요소들 중에서도 특히나 ‘빛’을 통해 주제를 표현한다. 강한 명암과 대비를 통해 앞에서 이미 “‘복잡한 서사구조의 전달’, ‘서로 유기적인 작용을 하는 피사체들의 관계를 표현’해냈고, 또는 깊은 심도를 통해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강조’해낼 수 있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실제로 깊은 심도의 어두운 장면들, 또는 배경보다 더 빛을 못 받고 있는 주인공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어 그가 얼마나 어두운 인물인지, 다시 말해 그가 속한 세계가 얼마나 어두운지를 그려낸다. 그가 속한 세계는 바로 이 사회이자 우리들의 인생이다. 밝은 조명의 세상과 그 안에 속한 어두운 인간을 통해 밝아 보이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달콤한 인생>의 주제를 ‘어두운 인간과 밝은 세상의 아이러니’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인간 때문에 밝은 세상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밝게 해석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대비 때문에 세상에 대한 냉소는 극명하게 표현된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제목은 이 주제를 확실하게 요약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달콤한 꿈을 꾸고 울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달콤해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낭만적 내레이션을 통해 ‘달콤한 꿈’은 곧 ‘달콤한 인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달콤한 꿈’은 이뤄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달콤한 인생’도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달콤한 인생’은 이뤄질 수 없어서 슬픈 ‘달콤한 꿈’과도 같다. 애초에 ‘인생’에는 ‘달콤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없다. 제목 자체가 역설적이다. 배경과 인물에 같은 비중의 빛을 가하거나 인물보다 배경을 더 밝게 하는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더 어두운 사회와 인생을 그려낸 것처럼, 제목에 ‘달콤한’이라는 밝은 수식어를 붙여 오히려 더욱 ‘쓴 맛’의 인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은 바로 ‘스탠드’이다. 스탠드는 불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말 그대로 ‘빛을 조절’할 수 있는 물건, 더 나아가 영화 전체와 인생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물건으로 표현된다. <달콤한 인생>의 대부분의 장면은 밤을 배경으로 하지만, 윤희수는 대부분 밝은 곳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윤희수와 함께일 때면 밝은 곳에서 있을 수 있다. 회장은 희수에게 빛(스탠드)을 선물하지만, 희수는 그것이 ‘촌스럽다’고 말할 뿐이다. 주인공 또한 희수가 갖고 싶어 했던 빨간 스탠드, 빛을 선물한다. 빛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느와르에서 누군가에게 빛을 선물한다는 것은, ‘너에게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싸움의 중심이 되는 회장과 주인공 둘 다 희수에게 빛을 선물한 행동과 걸맞게, 고래 둘이 싸울지언정 새우의 등이 터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희수는 적어도 영화 내에서는 밝은 곳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스탠드는 전체를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 단지 일부분만을 비춘다는 점과 영화 내에서 희수와 주인공이 스탠드를 껐다 켰다 하는 장면과 같이 스탠드는 누구라도 쉽게 끄고 킬 수 있다는 점 등을 통해 희수도 온전히 밝은 세상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역시 명암이 뚜렷하고 아이러니한 모순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되었든 ‘달콤한 인생’은 ‘이룰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어둡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인생을 조명하기에 ‘필름 느와르’는 그 이름에서부터 적합하다. 필름 느와르는 서사 구조보다 스타일이 더 중심이 되는 장르이고, <달콤한 인생>은 느와르 장르의 스타일을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만일 김실장이 그저 평범한 티와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면? 언제나 밝은 낮을 배경으로 한다면? 생매장 당할 때 비가 오지 않는다면? 김실장과 민기가 짝이되어 함께 싸우고 다녔다면? 마지막에 회장과 ‘끝’에서 만났을 때, 조명이 배경보다 인물을 환히 비추고 있다면? 효과적인 연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은 영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둡고, 그렇기에 빛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장르로서 <달콤한 인생>은, 형식에서는 빛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그려냈고, 내용에서는 빛을 대표하는 ‘스탠드’라는 소재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도 결국엔 모두 밝지만은 않은, 느와르적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주었다. 빛을 비추면 어딘가에는 그림자가 진다. 인생은 멀리서 볼 땐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달콤한 인생 뒤엔 쓴 인생이 있다. 마지막으로 필름 느와르로 분석한 <달콤한 인생>을 완벽히 표현하는 한 노래 가사를 인용하여 글을 마치려 한다.


그렇게 너무 밝히지 좀 마요. 세상은 원래 어두우니까
어쩜 그렇게 해맑게 웃어요. 자세히 보니 슬픈 표정이야
<2NE1 – 그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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