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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의 시간은 이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나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다음 순서는 그동안 3년을 휴직하셨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컴백하신 정상쌤이 준비하셨어요." "와~짝짝짝!"

"반갑습니다~ 진짜로 3년을 꽉 채우고 다시 이렇게 제 자리로 돌아왔네요~^^ㅋ 그래서  오늘은 주여를 준비하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할까?"

제천간디학교에는 항상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되면 모든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고 또 들어주는 "주를 여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주여!"로 불리우는 시간이다. 이렇게 우린 그 시간을 통해서 한주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저는 지난 겨울에 지인의 소개로 읽게된 책에서 만난 이 글귀를 들고 지난 3년을 지나오면서 다시 보게된 저의 모습을 말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크린에는 "늙어갈 용기"란 책에 쓰여진 글귀가 빔을 통해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손발의 마비는 뇌신경 세포의 죽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만약 뇌기능이 회복된다면 그건 본디 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 그리고 그건 또 하나의 나! 새로운 자신이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재활은 단지 기능의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능력을 준다는 것이니까 새로운 사람이여 빨리 깨어나라!'

"하하! 그런데 저는 사실 다시 태어난것 같지는 않았구요~ㅋ 하지만 '신경세포의 죽음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라는 그 말에는 저 역시도 과학선생이었던지라 반응을 할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멈춰버린 제 몸뚱어리를 보면서 영구장애를 말하는 그 모습에 몹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린 두 아들의 아빠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꼭 '해볼거다!'란 마음으로 끝까지 그렇게 몸부림을 쳤고, 지금은 이렇게 좋아진 제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만큼 "회복이 된다면 그것은 새로 태어난 것이다!"라는 그 말에 답을 하고 싶어서... 정말로 힘이 들었던 순간에 저를 잡아주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새학기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제가 젊던날에 여행을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인데요. 지난 사진을 다시 보면서 저는 '그래, 나는 항상 이 말을 붙들고 살았던거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생각의 깊이가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할 것이다!'


"말이 쬐~끔 크고 무겁죠? ^^ㅋ 그래서 젊던 날에는 분명 쉽게 말을 하지 않았고, 또 속으로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확신을 할 수는 없는 말이라는 것쯤은 스스로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거죠~ㅋ 그런데 이번에 몹시 아프게 되면서 저는 저를 다시 돌아봐야만 했고, 그렇게 정리를 하게 되면서 긴 시간을 한번에 조망해보니 그땐 분명하고 똑부러지게 그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어설픔을 느꼈고 또 답답함이 커져서 말하면 그건 그저 치기에 어린 모습으로만 비쳐졌기에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라는 말이 더 많이 들려 왔지만? 그래도 지난 겨울에 보았던 영화 한편을 통해서 저는 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또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지난 겨울에 상영 되었던 "히말라야"란 영화를 보셨나요?"
"예! 봤어요~"

"오~그럼 그 영화를 보면서 산을 오르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던가요?"

"아니뇨!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가는건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렇죠~ㅋ! 사실은 저도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것도 분명 있었구요! 하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저는 정리되는 부분이 조금은 있더라구요. 분명 세상이 보는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그런 모습은 무모함이었고, 또 대단한 것이 아니라면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는 것쯤은? 그리고 또 그런 모습이 명성만을 쫓아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곡해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결단이었음을... 그래서 그런 행동들이 보여지는 뚜렷한 결과를 바래서가 아니라 오르는 그 과정에 있었다면? 그래서 적어도 그 모습이 오롯히 자신이 생각한 그길 위에서 자신이 생각한 의도대로 걸었던 모습이라면? 그랬다면? 분명 04년의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들은 뜨겁게 자신의 생각을 믿었던 모습인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분명 이건 저의 억측일수도 있고 또 자의적인 해석이겠지만...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었음이 보이더라구요!! 이게 갑자기 무슨 뜬금없이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요~ㅋ"  


"......?"


"저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제가 말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그 이야기를요."

"하지마!! 가지 말라고~" "왜 당신이 가야하는 건데? 가지말라고~!" - (다은이가 멋지게 도와줬네요~^^v)
"아~왜그래~ 지금 죽으러 가는거 아니잖아!"
"아~몰라! 모르겠다고! 그래도 정말로 갈거면... 차라리 지금 헤어지고 가!"

"......"

"오~ 방금 다은이가 연기해준 저 모습은 10년전에는 여친이었던 집사람과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같이 산을 다녔고 또 하얀 설산을 동경했던 그녀가 이렇게 반대를 하게 됐던건, 사실 제가 가려고 했던 그산에 얽힌 사연을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던거죠."

92년  루프가르사르 동봉에서 2명 실종 -
 카라코룸의 히스파산맥에 위치한 처녀봉 루프가르사르 동봉에 한국원정대가 도전장을 냈으나 정상공격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어난 눈사태로 2명의 대원이 실종되는 사고로 그 도전은 끝이 났다. 파키스탄 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조난으로 기록된 이 사고로 전주 파이오니어스 알파인 클럽 원정대는 세계 초등정을 눈앞에 두고 후퇴하고 말았다.' - 한국원정사

"그런데도 제가 그 산으로 발길이 자꾸만 향했던건? 그런 형님들의 이야기를 찾다가 보게된 이 이야기 때문 이었습니다."


92.7.26 내 생일이었다. 영재와의 무선 교신시 "상황이 좋지않은것 같으니 2캠프로 하강해서 1. 2 일 후에 등반하라!" 그러나 "정상이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날씨는 곧 좋아질것 같구요! 오늘 같은날 등반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장님 생일 선물은 저희가 정상등정으로 하겠습니다!"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남은건 스키장 슬로프와 같은 설면만이 남았다.'

"그때 서른을 바라보고 있던 저는!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나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답답함이었겠지만, 스물여덟! 일에서도 여행에서도 내가 사는 의미와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던 저는 그렇다고 또 놓을수도 없어서 산에 들었고 그렇게 알게된 형님들의 모습이 저는 그저 부러웠습니다. '그건 누가봐도 어렵고 또 위험한 짓인 것임을 알면서도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긍정하고 또 믿었기에 끝까지 해보려고 했던 용기있는 모습이었다!' 라고 각인이 되어버린 저는... 만약 그곳에 가면? 그곳이라면 혹시? 스스로를 긍정하는 내 모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럼에도 세상의 말에 변명을 하느라 망설이는 제게 산악회 형님들이 전해주시는 고마운 마음을 받아 06년에 그곳에 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년인 05년도에 있었던 파키스탄 대지진 때문인지 연일 계속되는 눈사태로 악을 쓰면서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 났고, 아쉽게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저 스스로를 실패한 모습인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아프게 되면서 몹시 망가져버린 제 모습에 떨고 저를 보는 것이 분명 두렵기도 했지만...애써 고개 돌려 무릎꿇지 않았고! 또 포기하지 않았던건! 모두가 다 그때의 그 모습이 다시 돌아와 힘이 되어주는 모습 덕분이었습니다."


"그래! 실패는 했지만, 적어도 그 마음만큼은 뜨거운 진심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것이 싸늘한 타인의 차가움으로 꺼지게 하지는 말자!"

" 얌마! 어딜 갔다오든 갔다오면 어차피 다~군필이야! 그런데 뭐하려고 그런데를 가?"

"......"


"저는 그랬던 20년 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 안에는 이제 남은 시간이 6개월도 안될거라는 날도 있었고, 또 편마비로 오른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고 마냥 주저 앉은 저의 모습에 영구장애와 우울증이란 말을 들어야만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이 사진을 떠올렸던건 그때의 마음이 억울함이 아닌 미안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래!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도! 나는 이렇게 누워 있지는 않을거다! 그래, 나는 꼭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가서 놀거다! 꼭 그럴거다!'를 생각하면서 엉덩이가 찢어지고 또 피가 났어도 한번더 걷겠다는 그 마음이 있을수 있었던 것은? 그런 제 모습에 우려를 담아서 "그것도 욕심이에요! 2차 장애가 우려되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이런 모습도 인정을 해야 하는 겁니다." 라는 말에 분명 움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그 6개월이란 말을 처음 듣던날 아들에게 썼던 그 메모를 기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아빤 그곳에서도 이렇게 웃을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아빠는 끝까지 너희들의 곁에서 꼭 이렇게 웃고있을 거다! 아빠가 약속 잘 지키는지 잘 봐라~잉^^v"

그리고 이런 힘을 갖게해준 이곳을 스물한살에 찾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어쩔수 없잖아~ 다 그렇게 끌려 가는거지 뭐~"


전 그냥 어쩔수 없이 끌려간다는 그 말이 너무도 싫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른 모습을 생각하다가 끝내 이곳을 찾아 지원을 했던거구요~ㅋ 그리고 다녀와서는 어설프지만 알게되었죠! 말에 대한 책임? 그리고 자발적이란 그 말이 내게준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 모두가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스스로를 믿어야할 이유와 의미를 주었고, 그 의미를 잘 간직하고 역경 속에서도 지켜낼수 있는 참아 낼수있는 힘! 인내심을 주었던 것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감히 그곳의 추억들이 힘이 되어서 지금 이 일을 겪으면서도 무릎이 꺽여 넘어지지 않고 버틸수 있었던 것임을 느낄수 있었답니다~ㅋ


그리고 이렇게 우려의 말들을 들으면서도 복직을 생각했던건!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은 16년 전에 써놓았던 저 메모가!! 가진것 하나 없고, 또 해놓은 것도 하나 없이 마비된 몸으로 마냥 주저앉은 제 모습이 정말로 싫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에 저를 붙잡아 이렇게 살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 진짜로 잘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겁니다!" 라고 말했고, 유언실행!을 말을 했으니 저는 그냥 이렇게 살아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설프지만 영상과 함께 하모니카연주를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v


이천년 시월 구일 -

오늘 내 사랑하는 후배 선미, 태윤과 소주를 했다. 드디어 태백산맥의 끝을 보게 되었다.

아쉬움! 그리움! 부끄러움! 답답함!
내나이 스물다섯... 무엇을 보았는가? 그리고 생각하는가? 또 이상과 현실속에서 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는가?

우습구나! 어리다는 말로 입막음하기엔 너무도 커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걸 바라지는 않겠다.

다만 다음에 선생이 되어있을 너에게 부디 네가 옳다고 믿는 길로 접어들 용기가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래, 나는 웃음짓는다. 그러나 슬프기도 하다.

그건 끓는 피만큼 지금 내 이성이 피끓지 못하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는 않겠다.

그래, 난 네가! 이정상이란 사람이 결코 이글 앞에서 주저함이 없는 젊음일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날 믿어주는 그 모든것들을 위해... 최선이란 그 말이 부끄럽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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