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범람한 마음의 흔적
영화 '심야식당'을 보다 말고 모처럼만에 냄비를 꺼냈다. 물을 끓이고 소금을 넣고 페투치니를 익혔다. 면이 부지런히 익는 동안 커피를 내리고, 주전자를 치우고 팬을 올려 마늘을 볶았다. 마늘을 익히는 건 항상 근사한 요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잘 달궈진 기름에 마늘 볶는 걸 무척 좋아한다. 팬 위에 쏟아 부어진 마늘의 조각들이 알싸한 냄새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문득 달콤해지기로 결심하는 찰나, 덜컥 내려놓는 그 순간의 마음과 표정, 아마도 그간의 심란함이 만들어냈을 미묘한 점성(粘性)을 좋아한다. 팬을 하나 더 꺼내서 두툼하고 속이 꽉 찬 계란말이도 구웠다. 달걀을 무려 다섯개나 깨트렸다.
처음으로 열기(熱氣)가 닿은 음식, 주방의 분주함 같은 것, 그렇게 조금씩 성가신 것들이 인간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거라고 믿는, 그래서 늘 건강하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타박하는 나는, 암만해도 참 피곤한 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