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범람한 마음의 흔적
사랑하는 너야.
주전자 한 가득 끓인 따뜻한 차를 네게 건네고 싶어지는 계절이야. 오래도록 너와 마주 앉아서 달고 더운 것을 나누어 마시고 싶은 날씨야. 호호 불며 마시던 찻물이 슬며시 잃어가는 열기를 가늠하며, 긴긴 시간을 네 앞에 마주앉고싶은 그런 날들이야. 혹시라도 차가 식었다는 걸 이유로 네가 그만 일어나려할지 몰라서 나는 몇 번이나 주전자를 다시 덥혀 올 거야.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여자애의 이야기와, 내가 요즘 마음에 두고 있는 구두의 색깔,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어떤 나라의 소식같은, 시시콜콜한 말들로만 골라 내 오후를 채웠으면 싶어. 정말 추운 날들이야.
까탈스러운 당신이
"난 단 거 안먹어."
하며 다시 잔을 내게 밀어 놓을 줄을 알아. 겨우 이런 걸론 너의 그 무엇도 덥힐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아. 그래도 기어이 네 앞에 크고 예쁜 찻잔을 놓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이야. 그대를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야. 발열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추운 날씨 탓이야. 애써 빛을 내지 않으면 도무지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이상하고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