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양손으로.
등을 의자에게 떼어 앉고, 목을 거북이처럼 쏙 빼놓은 채 양손을 들어 올려 핸들을 꽉 잡은 모양새야 말로 웃기기 그지없다. 누가 핸들을 빼앗아 가려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꽉 잡을 수 있나 싶다. 소리 내어 웃지 않았지만 쓱 스쳐보고선 살짝 미소 지으며 스스로의 운전실력이 낫다며 뿌듯해한다. 핸들을 꽉 잡은 두 손은 분명 차가 도로시의 집처럼 날아가게 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그래서 더욱 우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차는 안전해요.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두 손 꼭 잡은 핸들과 눈은 전방을 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낳은 얼굴을 앞으로 쑥 뺀, 눈까지 튀어나올 것 같은 포즈 역시 웃음 포인트다. 하지만 대놓고 웃지 않는다. 살짝 피식하는 정도로 예의를 갖춘다.
이렇게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웃음 나게 하는 포즈들이 상당수가 보인다. 그에 반에 난 얼마나 멋진가. 우선 시트 아래 레버를 사용해 의자를 적당히 뒤로 뺀다. 너무 나갔다 싶을 정도에서 다시 앞으로 조금 끌어당겨 살짝 뒤에 있는 느낌으로 최적화를 완료시킨다. 다음, 왼쪽 레버를 조절해 등이 등받이도 적당히 뒤로 뺀다. 이도 마찬가지로 너무 뒤로 갔다 싶을 때 살짝 앞으로 당겨 최적화를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무게중심이 뒤에 가있다. 생각하건대 마치 페라리 차량의 낮은 시트에 엉덩이가 쑥 빠진듯한 자세를 취한다.(한 번도 타보지 않았지만 상상만으로!)
차량 탑승이 완료되면 백미러에 눈을 마치고 왼쪽 한 손만 핸들에 올린다.(오른손을 변속레버를 거들뿐!) 이로서 주행 모션이 완료됐다. 차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마트 자동차용품 코너에서 만원 정도에 구입한 운전을 쉽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볼'이다. 핸들에 달아놓은 채로 10년 넘게 운전하며 이 '볼'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물론 차를 바꾸며 볼도 함께 바꾸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의 볼은 하나다.
핸들 왼쪽에 부착하여 거의 왼손만을 사용하게 되지만, 한 손을 사용하여 핸들을 돌리는 맛이 꽤나 쏠쏠하다. 특히 코너를 돌 때 크게 원을 돌리는 맛이 제법 맛깔난다. 회전하는 꼬부랑길 구간이나 주차를 할 때 왼손으로 핸들을 크게 두세 바퀴 돌렸다 풀다를 반복하는 맛이란 레이싱 선수의 코너링 부럽지 않다. 난 왼손의 마술사다. 뒤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는 모습이 아내로 하여금 절대적인 호감을 산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본인은 죽어도 아니라고 할 거다.
자신감을 충만하게 만드는 바로 이 '한 손 운전'은 10년이 지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리라고 믿었으며, 이를 누구에게든 추천해줄 수 있었다.
"신세계를 경험하려면 핸들에 볼을 달아. 그러면 쾌락을 맛볼 수 있어."
"한번 해봐. 하늘을 날 수도 있어."
헛소리를 짓거리던 한 손 운전(원 핸드 드라이브) 찬양론자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어깨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십견의 느낌과 동일하다 하니 사십견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처음엔 살짝 뻐근한 정도여서 운전하면서도 어깨와 목을 수없이 움직였다. 선팅을 조금만 더 투병하게 했다면 옆에 함께 정차한 차에서 보고, 좀비에게 물려 다시 좀비로 변하는 과정을 목격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각기'를 연상시키는 목을 풀어주는 모습은 내가 봐도 진기명기다.
왼쪽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프다. 1년 이상을 참았다. 원인은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주먹 쥐듯 움켜쥔 '볼'은 엑스칼리버다. 이제 이 엑스칼리버를 역사의 뒤안길로 내던져야 하는 것인가? 괴롭고 슬프다.
아직 덜 아픈 게지. 저따위 소리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통증에서 더해 팔의 이용가치를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등을 긁을 수가 없다. 오른손이 긁어야 할 범위와 왼손이 긁어야 할 범위가 따로 있는 건데 이제 왼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왼팔꿈치를 직각으로 만들어 뒤로 넣을 수가 없다. 집구석에 숨어 있던 담양에서 사 온 대나무 등 긁게를 찾느라 온 서랍을 다 뒤졌다. 이젠 이 등 긁게 가 엑스칼리버다.
처가에 있던 일본 동전파스를 붙이고 '이거다!'라고 외쳤지만 직구가 귀찮아 결국 한국 명품 신신 파프를 널찍이 붙였다. cool과 hot 두 종류를 사서 번갈아가며 붙이고 있다. 하도 앓는 소리를 하니 아내가 하루에 한 번씩 일로 와보라며 구겨짐 없이 바싹 붙여준다. 고정 팩 가지 붙여가며 열성으로 간호한다.
파스 냄새가 진동하는 매일의 일상에 운전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운전자의 교만이었다. 두 손으로 운전했던 많은 분들의 어깨는 건강하리라 본다. 두 팔은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한다. 편식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걸 이제야 할게 되다니.
한의원과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어 원인을 파악했다. 어깨를 잡아주는 '회전근개'의 문제란다. 그 원인은 운전습관이 유력하다.
언제 완치될지 모르겠으나 운전습관을 바꾸고 재활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다시금 내 팔로 등을 긁고 싶다.
'한 손으로 운전하지 마라. 그리고 운전이 쉬워진다고 볼을 잡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