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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Feb 22. 2022

지는 게임을 왜 해?

안 한다

축구게임을 오랫동안 해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전부였던 '축구!' (이건 실제 축구다). 

지금은 당시 집과 같았던 '운동장'을 잊고 살지만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게임은 '여전히' 하고 있다.


게임중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취미생활일 뿐이니까.


아내는 틈만 나면 게임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며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뒷덜미를 잡아채지만, 그래도 뿌리치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이젠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이건 이미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하며 '물아일체'가 되었기 때문.


하지만 며칠 전 나와 절대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축구게임'을 지웠다. 그동안 투자한 어마어마한 시간과 열정을 한 순간에 내버렸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다른 이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니까 해낸 거지.


이유는 단순하다.


오래전 AI 컴퓨터 팀만을 상대하던 내가, 언젠가부터 실제 지구의 인간들과 경기하면서 수많은 고레벨의 실력자에게 좌절하며, 이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위 10%(자랑 아님. 그냥 오래 하다 보니..)에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절대 노력으로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게임은 장비 빨'이라는 말 들어봤는가? 물론 별다른 장비 없이 현란한 스킬로 제압하는 실력자도 있겠지만

그래도 장비빨이다. 결국 돈이 실력이 된다는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실력자'이거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다.


'장비 빨도 실력'이란 말도 어떤 면에서 일리는 있지만, 믿고 싶지 않다.


이제 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 올라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수많은 패배'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삶에서의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내면의 외침!>


'나도 돈 좀 투자하면 더 올라갈 수 있어' 하지만 안 할 거야.

게임이 주는 특별한 성취감에 십수 년간 게임을 하고 있지만 이젠 그 만족감이 욕심이 되고, 다시 분노가 되어 돌아오는 이 고리를 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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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지고 싶지 않아서 게임 안 하겠단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계정을 지웠다.


게임에서 질 때마다 수명이 7시간씩 줄어간다. 아내의 수명도 줄어간다.


'대체 지는 게임을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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