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취준생의 2년간 허리치료기 0
작년에 난 누워있었다. 24시간 중에 밥 먹는 시간 빼고, 운동이나 병원 갔다 오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은 그랬다. 허리디스크는 자연치유가 된다는데 내 몸은 왜 인공치료도 안 들어먹을까. 디스크가 죄다 흡수돼서 아주 뽀송해질 때까지 누워있어 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국제 마스터처럼 누우면 단 1cm도 꼼짝 안 하던 그때, 다 나으면 뭘 제일 하고 싶냐고 친오빠가 물어본 적 있다.
“음…. 글쎄…. 여행..?”
갑작스런 자유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스무 살처럼 대답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누워있는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 글 쓰고 싶다”
당신이 본 그대로가 맞다.
5분도 잘 못 걷고, 친구도 못 만나고, 앉아 있지도, 일어서있지도 못하던 때에 하고 싶었던 게. 그러니까. 글쓰기였다.
허리는 못 쓰는데, 글은 쓰고 싶었다.
한 음악가에게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냐고 물었다. 군대에 갔더니 음악을 할 수 없어서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은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된다. 정정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해왔던 게’ 뭔지 알아차린다.
수학이 너무 싫으면 그 짜증을 일기에 쏟아부었고,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기면 어떤 점이 날 설레게 했는지 남겼다. 일기 덕분에 난 어떤 걸 하면 행복한지, 그래서 뭘 하며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인생에서 이제껏 없었고, 다신 없을(없어야 할) 답답함의 폭탄 맛을 맛봤다. 그러면서 일기를 못 쓰니 내 생각과 감정을 비우지도, 정리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누르고 눌러 터질 때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파서가 아니라 답답해서 울었다.
허리디스크는 답답한 병이었다. 당연하게 허리디스크라는 판정을 받으면, 단 하나의 치료법이 있는 줄 알았다. 21세기의 병은 그런 거 아닌가? 내비게이션에 주소만 찍으면 “경로를 안내합니다”라며 단박에 알려주듯이, 감기면 약을 먹고 다리가 부러지면 접합 수술을 한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어야 할 정형외과 선생님 말씀대로 하는데도 어쩐지 계속 같은 곳만 맴돌았다. 다시 또 약, 도수치료, 약, 두 배 더 비싼 도수치료. 그제야 내가 이 게임의 초보자가 되어 다른 지도나 나침반을 파밍 해야 한단 걸 알았다.
문제는 다른 고인물한테 길을 물어봐도, 이 사람은 이쪽, 저 사람은 저쪽이란다. 도수치료 하지 마세요. 하세요. 하루 종일 걸으니까 나았다. 더 안 좋아졌다. 수술은 절대 안 돼요. 너무 힘들면 수술도 나쁘지 않아요. 필라테스하세요. 운동 조심하세요.
이 길로 가볼까 하다, 처음보다 더 안 좋아진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겁에 질렸다. 유튜브 댓글, 관절질환 카페 곳곳에는 왔던 길을 가고 또 가는 사람이 망령처럼 돌아다녔다. 끝나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는 공포 이야기처럼. 나도 이곳을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건 아닐까? 어떤 결정도 내리기가 무서웠다.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픈 원인을 몰라서였다. 물론 디스크의 원인은 있다. 나쁜 자세와 외부 충격. 그런데 어느날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통증이 없을 수 있고, 허리디스크가 없는 사람도 아파서 곡소리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풀어보자면, 통증과 실체적 몸의 이상은 일치하지 않는단 말이다. 유퀴즈 영상으로 본 적 있을 수도 있는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의 <백년허리>에서였다. 심지어 허리디스크란 병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책도 봤다. 그럼 난 도대체 뭐를 치료해야 하는 거란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옷에 생긴 허리디스크라는 작지만, 깊은 구멍을 꿰매려다, 내가 옷을 사용하는 방식을 돌아본 이야기다. 통증을 잡기 위해선 내 몸 전체를 돌아봐야 했다. 물론 나도 대부분의 시간은 구멍을 꿰매는 데 쓰긴 했다.
지금 난 노트북 앞에 앉아 이글을 치고 있다. 1년 전의 내가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하려나. 그때 답답해 미치겠다던 마음을 지금이나마 글로 풀어줘 본다. 혼돈의 파도 속에서 빠져나오니 그제야 파도의 모양이 보이는 듯하다. 물론 나의 경험이 200만의 허리디스크 환자 모두에게 적용될 리 만무하다. 그냥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허리 문제를 거쳐왔는지 정도로만 봐주면 좋겠다. 찬찬히 보다 이 인간 나랑 좀 비슷한 것 같다면,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내 허리 통증은 정말 허리 때문이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