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조의 호소 Nov 12. 2018

후회할 걸 알면서도 불효한다

다크서클과 망나니

 어제는 엄마 생신이었다. 우리 딸들은 선물로 평소 엄마가 갖고 싶어 하셨던 생필품을 고르고, 현금과 유머러스한 돈봉투를 준비하고, 편지를 썼다. 예전에는 편지지 한 장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깊은 고민 없이 생각나는 대로 죽죽 써 내려갔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는데 몇 번이나 막혔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나는 결국 편지지를 갈아엎고 다시 썼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정성을 보여 드리기 위해 써 왔던 손편지들이 무색하게, 이날은 ‘진짜 편지’를 쓰는 기분이었다.


 고작 일 년 차이일 뿐인데. 작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어떻게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일 년 사이에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가 본격적으로 보험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것, 집에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빠의 짜증이 늘어난 것, 내가 시련을 당한 날 엄마가 위로를 해 준 것, 그리고 내가 아픈 병에 걸린 것.


 엄마의 다크서클은 내 투병생활과 함께 더 짙어져 갔다. 엄마는 모든 게 다 엄마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아침마다 촛불을 켜 놓고 몇 십일 동안 기도를 하셨다. 몸에 좋 거라며 이것저것 구해 오기도 하고, 밥 먹을 때 음식 가려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초반에는 그런 엄마가 불편했다. 나를 딸이 아닌 환자로만 취급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그래서 괜히 엄마에게 툴툴거리고, 부러 몹쓸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너무 내 감정에 눈이 멀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엄마가 가엾어졌다. 철없던 나는 고약하게도 힘없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최근 들어 엄마휴대폰도 잘 두고 다니고, 화장실 불 끄는 것도 잊어버리고, 약속 시간도 자꾸 깜빡한다.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면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곧 사라질 것 같아 심장이 철렁거린다. 언젠가 꿨던 꿈처럼, 엄마가 먼 곳으로 떠나고 남은 우리는 하늘만 보며 끄억끄억 우는 날이 정말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분명 후회할 거란 걸 안다. 왜 그때 그토록 모진 말로 엄마 심장을 긁었을까. 왜 나는 엄마의 단단해진 어깨를 한 번 주물러 드리려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나만 생각했을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엄마를 충분히 안아 드리지 다. 왜 이러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닌 척하지만 사랑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