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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pr 09. 2016

#22 내 마음 해탈하여 보살이 되리

정리벽있는 여자가 6묘를 키우면 열반의 상태에 들지니...

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청소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해병대 점호시간처럼 물건들이 오와 열이 딱 맞춰져 있어야  마음의 안정이 된다. 한마디로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못 견뎌한다.누구말로는 사서 고생하고 참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태어날때부터 요로코롬 생겨먹은것을....


그러나 고양이를 키우면서부터 상황이 조금씩 야금야금 변하기 시작했다. 3마리,,,아니 4마리까지는 그냥그랬었던 것 같다. 습관처럼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들이 몸에 배여있어서 딱히 힘든 줄 몰랐었다. 그러던 중 나의 이 정리벽과 청소강박증에 보란듯이 불을 지피고 인내심을 시험하기 시작한것이 5묘와 6묘가 차례로 들어온 시점이었다.


 고양이는 무지 조용하죠?
하루종일 잠만 자고 얌전하니 너무 좋겠다~


누가 그랬던가? 고양이가 고독하고 얌전하고 도도한 존재라고~~

형아들은 이제 8,9살을 지나고 있으니 출렁이는 뱃살도 버거워할때라 밥먹을때말곤 딱히 움직임이 많이 떨어진 편인데, 이 막내 두 놈이 넘치는 활력을 주체하지 못해 악마견 비글마냥 온 집을 쑥대밭으로 헤집어놓기 일쑤였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융단폭격맞은 전쟁터를 마주할 것을 알기에 퇴근이 두려워지기까지 한다면 이건 뻥일까...어찌됐든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는게 더 소름돋는다는 거~

난장판은 강아지와 어울리는 단어다


언젠가부터 집에 들어오면서 욕에 욕을 해대면서 옷도 안갈입고 청소부터 하기 시작하는게 너무 힘에 부치고 매사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철없는 막내들한테 엄마 피곤한데 이게 도대체 뭐냐며 버럭버럭 화내고 누구 짓인지 범인색출하기 바빴다. 아무리 청소를 좋아하기로서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냥 씻고 얼른 자고싶은 날이면 그 짜증은 배가 되었다.

(이틀만에 사망한 화분)       


그러던 어느날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날따라 집 상태도 거의 그대로이고 우르르 몰려나와야할 6묘들의 반응이 무지 시큰둥한게 아닌가. 딴청피우는 놈, 그냥 자던잠 계속 자는 놈, 지 볼일 보는 놈 등 .... 조용하고 깨끗하고 평소에 이랬으면 참 좋겠다 싶었던 집상태였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자꾸 찜찜하고 조금은 섭섭하기도 한 이상야릇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아미야~왜 그래? 어디 아퍼? 왜 잠만 자?
캠벨~ 오늘 형아들이 안 놀아줬어? 괜찮아?

몸은 편했지만 난 아이들에게 계속 괜찮니? 어디 아파?를 연발하고 있었다. 괜히 내가 6묘들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뭔가 케어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밥만주면 되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옆집 아줌마가 된 기분이랄까...내가 아니면 안될것만 같은 아이들에게 괜히 섭섭함을 느끼게 된 이 이중적인 마음은 뭔지 궁금했다.

                   (출근전후 현관모습)                                                                                                         

다음날, 난 이상하게도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역시~우리 애들이 돌아왔구나!  이노무 시키들...오늘 잼나게 놀았구나!

왠지 기뻤고 피식피식 헛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게 뿌듯했고 뒤치덕거리를 하면서 내는 짜증과 홧병이 포기상태를 지나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해탈의 경지에 이른게 아닐까 싶었다. 조금만 더 이 경지를 지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를 중얼대며 몸에서 사리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득도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 고양이들에게 오히려 이젠 아주 쪼끔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단계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언젠가 내가 친한 언니에게 '고양이들이 너무 어질러서 힘들다, 청소가 이제 즐겁지가 않다' 고 토로했더니 그간의 청소경력과 너의 깔끔성격을 살려서 반려동물가정 전문 청소업체를 차리는 건 어떠냐며 깔깔대길래 미래의 유망직종이라며 노후는 걱정없겠다는 애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었던것이 이제야 좀 진지하게 다가오는 중이다. 이왕 할거 청소도 좀더 전문적으로 동물맞춤으로 연구한다면 반려동물가구 천만시대에 귀가 확 트이는 사업아이템이 될 것만 같다. 왠지 벌써 돈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아 심쿵심쿵한데, 이왕이면 정리컨설턴트 자격증도 따놓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전국의 돈 좀 만지는 사장님들에게 고합니다~

고급기술은 보유하고 있으나 자금이 없는 고양이언니에게, "사장님들~투자 한번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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