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1. 풍경과 소리로 남은, 달빛기행의 여운
가끔씩 마음 답답할 땐 혼자서 훌쩍 야간 열차를 타고, 토함산의 일출을 보고 올라오곤 한다는, 어느 동호회에서 알게 된 동생의 말에 귀가 솔깃했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경주의 토함산, 그곳의 새벽 일출. 서울에서 경주를 무박의 당일치기로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는 후배의 일상 여행기는 여행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고, 기꺼이 떠나 보고 싶은 동경과 기대감을 갖게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난, 후배의 지난 여행 이야기를 꺼내들었고, 역시나 친구도 나처럼 눈을 반짝였다. 무엇이든 느린 나보다는 척척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빠른 친구였고 경주산행을 걸음에 옮겨보자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와의 경주 일정을 짜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다 남산에도 달빛기행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랬었다. 밤, 달빛... 좋은 이와 함께 걷는 길. 더욱이 그것이 하늘과 산과 나무가 함께하는 숲길이라면 더없이 좋겠구나 하는. 오래전 영덕의 야간산행 글을 읽으며 꼭 해보고 싶던 마음이었는데.. 그래 걸어보자. 깊은 밤, 달빛 내리는 산 속을. 이른 새벽, 일출을 맞이하는 숲 길을... 그렇게 해서 나서게 된 1박 2일의 주말 경주행.
새마을호 1057 열차 6호차 38석 오후 1시 10분 경주행. 토요일 정오 무렵, 서울역에서 친구와 만나 예약했던 열차를 타고 4시간 40분을 달려 경주에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을 했던 달빛기행 집결지에 모이는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남은 시각. 기차역에서 나와 대릉원을 끼고 40분 남짓 돌담길을 걸어 친구가 알아둔 순두부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상서장주차장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 인솔자로 와 계셨던 김구석 소장님이 주신 산행에 관한 리플릿과 직접 남산 유적들을 촬영해서 만드셨다는 기념엽서를 보며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신청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보름달이 뜨는 저녁, 남산의 문화유적과 함께
남산 달빛기행은 경주 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이 1996년부터 매월 한차례 보름을 전후로 한 토요일에 달이 뜨는 시간에 맞춰 달빛 아래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어김없이 둥근달이 떠오르는 주말이면 수천 명들의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만월의 달빛과 함께 산을 오르며 남산의 사계(四季)를 함께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2008년 5월 17일(토). 음력 사월 열사흘. 달 뜨는 시각 오후 4시 56분. 리플릿을 보니 5월의 산행이 116회째. 코스는 상서장 주차장-남산신성 장창지-해목령을 돌아서 오는 길이다.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산행을 할 수 있으니 손전등은 사용하지 마세요. 그리고 행렬이 끊기지 않도록 앞사람만 보고 따라오지 마시고 뒷사람을 의식하며 따라오세요." 저녁 7시 30분, 산행을 위해 모인 40여 명의 사람들이 김구석 소장을 따라 천천히 줄을 지어 산으로 들어셨다. 사위가 조금씩 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들어선 숲길은 이내 캄캄해지고.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전설이 됩니다...
김구석 소장의 산행을 여는 말로, 그렇게 남산과 함께 그곳이 품은 문화유적과 함께, 우리도 전설 속으로 스며드는 길. 눈 앞에 전기 불빛이 사라진 자연의 밤 풍경 앞에서 자꾸 헛디뎌 조심스럽던 발걸음도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편안해졌다. 굽이굽이 '명주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경주 남산의 길을 따라, 폭신한 숲길도 걸어보고 언덕의 바윗길도 걸어가고..
밤하늘, 달빛, 소나무, 밤의 새 울음 소리... 밤의 공기, 밤의 기운들. 그러한 풍경 속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옛사람들이 붓을 들던 심정이 헤아려지는 듯했다. 붓끝에서 한지 위에 부드럽게 피어나는 묵향의 만월. 그네들이 바라본 달빛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단조로워 보이기만 했던 우리 옛 그림 속의 풍경과 운치를 이젠 조금이나마 제대로 감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이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 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
달빛 아래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 길, 정일근 詩集 <경주 남산> 중에서
경주 남산의 달빛기행은 유적지를 만날 때마다 문화해설사가 찬찬히 풀어주는 옛 신라인들의 이야기를 듣던 야간 역사답사길이기도 했고, 쉬어가는 사이마다 경주 남산에 관한 시를 읽어주는 밤의 낭독회를 열어 보이는가 하면, 바위에 걸터앉아 달빛에 젖은 대금 연주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작은 음악회도 즐기게 해주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김구석 소장은 옛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시도 읊고 피리도 불고 하며 즐겼을 풍류 한 자락을 달빛 아래 함께 걷는 이들과 그렇게 나눠보고 싶었다 했다.
신라시대 대규모 석성의 흔적, 미완의 발굴터 남산신성
이날 코스의 주요 기점인 남산신성 장창터는 번성을 누렸던 신라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던 곳. 김구석 소장의 자세한 해설도 이어졌다. 신라시대 왕궁이 있던 반월성과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남쪽의 산성으로서, 돌로 쌓은 현존하는 삼국시대의 대표적 석성 중 하나라고 한다. 지금은 성이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웅장했던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미완의 발굴터로 남아있다.
사적 제 22호로 지정된 이 유적의 공식 명칭은 경주남산성. 신라의 26대 왕인 진평왕 때 기존에 남산에 있던 성곽을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징발해 남산성을 새로 만들었다 하여 신라인들은 남산신성(南山新城)으로 불렀다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월성을 방어하기 위해 진평왕 13년(591년)에 처음 축성돼, 문무왕 3년(663년)에 대대적인 증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 안에는 문무왕이 증축을 하면서 전쟁을 대비해 지은 남산 장창(長倉)이라는 커다란 창고터가 세 군데 남아있다. 동창, 중창, 서창으로 나누어 무기와 식량을 저장했는데, 그중 식량창고였던 가운데의 중창만 해도 길이가 9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이었다고. 남아있는 주춧돌과 기와 조각들의 흔적이 그 규모를 말해주고 있는 중창터에는 그때의 식량이 불에 타 썩지 않은 쌀이 아직도 발견된다고 한다.
김구석 소장은 남산신성의 축조에 관한 주요한 기록을 담고 있는 신성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성곽을 쌓으면서 그에 동원된 사람들이 자기네가 맡은 성벽 일정 구간마다 신성비(新城碑)를 세웠는데, 모든 비석에는 '성벽을 쌓은지 3년 이내에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관계자들의 벼슬, 성명, 출신지는 물론, 축성 당시의 인력이 동원된 고을명, 인원수, 공사기간, 책임자, 축성거리 등이 적혀있다고 한다. 당시 신라인들이 어떻게 성을 쌓았는지는 물론, 국가가 대규모 국책사업에 어떻게 백성을 동원했으며 당시 시대상은 어떠했는지까지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제1급 기록물들로 1934년 10월 경주 남산 식혜곡(食慧谷)이란 골짜기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2000년까지 총 10개가 발견됐다. 신성비가 애초 몇 개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그 규모를 짐작해본다면 200개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해목령쯤이었을까. 남산에 내려다 본 경주 시내의 야경.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아른거리던 불빛들을 지나치기 아쉬워 밤눈 깊지 못한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신라시대 집집마다 불을 밝히며 모여있던 풍경들은 어떠했을까.
낯선 이들과 함께했던 어두운 밤의 산행길은 지루하거나 서먹하지 않았다. 포항서 온 중년의 부부, 아들과 온 교사 어머니... 곁에 앉은 이웃들과 인사하며 서로 싸온 김밥과 간단한 음식도 나누면서 산속에서 두런두런 모여 앉아 먹던 야식시간은 마치 아이들처럼 밤소풍이라도 나온 기분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웅장했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발굴터인 남산신성과 그 안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좋은 해목령까지 둘러보는 코스를 마치고 돌아내려 오던 길, 일행들을 이끌고 1인 다역을 마다하지 않던 소장님은 단체 손님들을 위한 명당 자리라며 소나무 숲이 둥근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넓은 벌판이 펼쳐진 산비탈에서 마지막 마당을 풀어냈다. 동행인들이 간단히 소회도 풀어내고 노래도 부르는 어울림의 시간.. 야간산행에 올랐던 길손들이 모여 앉은 곳에서 좀 떨어진 뒷자리에서, 친구와 난 달빛을 마주하고 풀밭에 누웠다.
멀찍이 들려오던 그 수런거림 속에서 단체로 합류했던 동국대 관광레저학과 학생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내 귓가에 머물던 노래 한 곡. '아, 21세기의 대학생들도 이들의 노래를 아는구나!' 다소 의외였던 한 새내기 여대생의 선곡에 반갑기도 하도 놀랍기도 하고. 밤공기를 타고 흐르던 목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들었던 꽃다지의 노래.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 전화카드 한 장, 꽃다지
노래 가사 속 카드 한 장도 이젠, 남산의 유적만큼이나 전설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그만큼 훌쩍 흘러버린 시간들... 쉼 없이. 흐르는. 시간.
랜턴의 불빛 없이, 달빛 아래 내 몸을 맡겨 산 속으로 들어서는 일. 밤의 기운을 내뿜는 숲 속에서의 쉼. 야간산행으로 그렇게 첫 걸음을 내딛었던 경주 남산에서의 네 시간. 그리고 그 길에서 다시 만났던 정일근의 시와 귀에 익은 노래.
눈을 감고 보는 길. 풍경과 소리로 남은, 달빛기행의 여운이다.
대금소리도 그렇고 그 여대생의 노래도 그렇고 그 밤에 녹음을 해두었던 거 같은데 파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걸어보는 꽃다지의 라이브 음원. 눈을 감고 들으면 관객의 박수소리가 그날 밤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다.
http://www.hopesong.com/video/ebs/ebs_03.wm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