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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채집자 Oct 02. 2015

기억의 시간들, 돌탑에 새긴 마음

시인과 촌장, 가지산 석남사... 울산 영남알프스 첫 걸음 1

모처럼 일상의 휴식을 얻게 된 부산의 언니가 전화로 바깥 나들이를 청해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바쁜 회사 업무에 어긋나는 일정으로 함께 언니와 움직여볼 수 있는 시간은 아쉽게도 1박 남짓.

잠시 숨고르기의 시간이 되어줄 부산행, 어디든 내 가자 하는 곳이면 다 좋다는 언니의 말. 어디로 갈까, 다른 생각의 여지 없이 휴양림을 떠올렸다.  쉼... 숲에 들고 싶었다.

                              

1박 2일의 일정, 가능한한 여행지까지의 이동시간은 줄여야 했다. 인터넷으로 휴양림 사이트에 들어가 부산에서 근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울산에 자리하고 있다는 한 곳을 알게 되었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예약 현황을 살펴보고 휴양림 안내에 올려진 주변 볼거리를 알아보다가 간월재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곰배령을 떠올리게 하는 넓고 탁 트인 산비탈 능선의 사진. 그곳에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했다. 그래, 가보자. 클릭! 숙박 예약 완료.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부산. 정오가 조금 지나 언니와 조카랑 함께 자동차를 타고 울산으로 출발했다.  휴양림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휴양림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도로변의 한 음식점 앞에서 차를 세웠다. 빛바랜 간판과 지붕, 파라솔이 접힌 야외테이블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지난 가요들... 라이브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곳인지 입구엔 옛 시절 가수들의 공연사진이 빼곡히 붙여있다. 주인이 손길이 가신지 오래인 듯 낡고 바랜 것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무심하게 방치된 듯한 분위기가 묘한 여운을 주는 곳이었다.

 



추억이 흔적이 되는 곳, 시인과촌장

나무 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그만 입이 벌어진다. 기둥이며 천정, 벽면을 온통 메우고 있는 손글씨 메모들이 가득. 누렇게 바랜 종이들 위에 덧대어진 하얀 메모지들, 숱한 종이 발자국들로 가득한 거대한 시간 창고 같던 곳. 여기 저기 잠깐씩 고개만 돌리면 어느새 2년, 3년, 5년, 7년... 시인과촌장이라는 곳이 거기에 자리해온지도 꽤 오래 전인 모양이다. 갖가지 사연과 맹세, 다짐들이 가득한 손글씨들이 그곳에 걸음 했던 많은 이들의 무수히 겹쳐져있는 기억의 시간들을 품고 있었다.  

                             

언니는 우리가 앉은 테이블의 한쪽 구석에서 동생과 같은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2011. 10. 16(일) 날씨 맑음. 엄마와 이모와 함께 여행 간다!!!!.....' 열심히 메모를 적는 어린 조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메모를 남기고 그림도 그리고, 다시 왔을 때 알아보기 쉬워야 한다고 붙일 자리를 고르느라 이곳저곳을 누빈다. 흔적이 추억이 되는 곳. 아이가 남긴 그 날의 기억 한 장이 그곳에 또 그렇게 보태졌다.



낮익은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대학 1학년 겨울 서클 동기들과 갔던 장흥 토털미술관 찻집이 떠올랐다. 천정둘레를 빼곡히 채워가며 내려오던 수많은 메모지들이 가득했던 내 기억 속의 또 다른 장소. 그 곳에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고 차를 마시던 풋내기 여대생들이 어렴풋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거기 생각난다, 장흥 조각공원의 그 찻집.."  언니도 그곳을 기억했다.  "그래 맞아, 차 마시면 그 머그컵도 가져올 수 있었던 곳이지?" 시간의 간격은 있어도 같은 곳을 공유하는 따뜻한 기억이다. 대학생이던 언니가 친구들과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내가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을 데려갔던 곳이었다. 스무 살의 나도 다시 와서 찾아보겠다며 그 찻집에서 메모를 남겼었다. 아마 언니도 그랬으리라.  그곳도 아직 그렇게 남아있으려나...


24번 국도 석남사 가는 길에 만나는 식사와 차가 가능한 곳. 카페 전체가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로 가득하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 촛불과 한지등 조명. 항아리손수제비, 파전, 전통차와 동동주 판매 및 라이브 공연.


점심메뉴로 주문한 항아리 수제비를 공깃밥과 함께 훌훌. 식사를 마치고 나와 휴양림으로 들어가기 전, 근처의 절 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10분, 차로 향한 곳은 69번 지방도로 덕현교차로에서 덕현삼거리 배내골 석남사 방면으로.  숙소로 가는 길에서 제일 가깝게 위치해 있었던 가지산 석남사. '비구니 사찰'이라는 말에 왠지 더 끌렸던 곳이다.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단청이 돋보이는 일주문은 매끈하면서도 매무세가 곱다.


입장료를 내고 일주문을 지나 절까지 이어진 길을 걸었다. 오른쪽으로 계곡을 두고 울창한 나무들이 여유롭고 기분 좋은 숲길을 내주었지만, 너무 반듯하게 단장된 바닥보도블록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타박타박 흙길을 걷는 길이었으면...' 그래도 일주문에 들어서면서 코끝을 후욱 스치던 서늘한 숲 냄새-, 가을의 청신한 공기.   


아랫녘의 기온은 단풍 물들기에는 아직 인듯 길가의 나무들은 푸른 기운이 가득했다.


절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계곡 곳곳에 쌓아 올려진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조카의 눈엔 더없이 재미있어 보이는 흥미로운 놀이터가 펼쳐진 모양이다. 아이는 절 생각은 아예 잊은 듯 돌탑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신기한 듯 구경하고 소원을 빌어둘 돌멩이 줍기에 여넘이 없다.  "소원은 골라서 한 가지만 비는 거야.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래야 이루어지지." 그 말이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열 살 나이에는 그저 속으로 담아두는 마음의 은근함보다는 종알거리고 뛰노는 즐거운 몸놀이가 더 간절한 법.




졸졸 흐르는 계곡은 비가 적어 물이 많진 않았지만 맑았다. 자리를 뜰 줄 모르는 조카 덕에 나도 돌탑들을 바라보며  물가에서 물끄러미. 물 위에 띄워진 노란 나뭇잎들이 돌 틈 사이를 돌며 흘러간다. 반쯤 잠긴 돌멩이들 사이에서 물 위에 일렁이던 하늘과 나무의 잔영들-. 상념이 인다. 다시 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카에게 절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 돌탑을 쌓기로 약속을 하고.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가장 큰 사찰, 석남사

석남사는 절을 에워싸고 있는 계곡을 다리로 건너야 들어설 수 있다. 침계루 누각을 중앙의 입구로 하여 계곡의 바위를 따라 양쪽으로 견고한 담장이 둘러쳐진 외부의 모습이 마치 해자를 두른 중세의 성 같은 인상을 풍긴다.

몸을 낮춰 침계루를 들어서서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을 마주하고 중앙에 자리한 삼층석가사리탑을 만나게 된다. 절 뒤로 펼쳐지는 가지산 자락의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조용히 절을 감싸 안고 있다.



석남사 삼층석가사리탑(石南寺三層石迦舍利塔)
도의국사가 신라 헌덕왕 16년에 세운 15층 대탑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탑신의 기단만 남아있던 것을 1973년 인홍스님이 이 절을 복원하면서 삼층탑으로 다시 세우고 탑 속에 스리랑카 사타시싸 스님이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


대웅전 뒤편에는 약 500년 전, 간월사에서 옮겨왔다는 길이 6미터가 넘는 엄나무 구유(牙木槽)가 놓여있었다. 스님들의 공양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두거나 밥을 퍼 담아두었던 그릇이라는데 1000명 대중을 공양하는 데 쓰였다 하니 지난 시절, 절의 영화로움을 짐작할 만하다.

대웅전 뒤에서 계단을 오르면 작은 전각을 마주한다. 불상이 없는 전각, 조사전(祖師殿). 이름 그대로 석남사를 창건한 도의국사를 비롯해, 비구니 사찰로 거듭나게 하였다는 인홍선사의 진영까지 이 절을 맡아왔던 역대 조사들의 영정 초상화들이 내부의 3면을 둘러싸고 있다.


대웅전 우측으로는 설법과 선이 이루어지는 강당인 강선당(講禪堂)이 있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스님들의 털신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산중 산사에서 이른 새벽과 깊은 밤을 맞이하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겨울맞이는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스님들의 요사채인 강선당 앞을 지나 청화당 뒷담장을 끼고 돌아가면 도의국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부도탑으로 오르는 길이 계단으로 이어진다. 기와 담장을 따라 오르는 계단의 양옆 화단에는 스님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가꾸어져 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져내려 온 천년이 넘은 부도탑이라 하는데 주변부도 잘 단장되어 있어 마치 작은 공원 같은 느낌이다.  금강송일까... 부도탑 주위를 둘러보다 두 그루가 한 몸으붙은 듯 모습의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탑돌이를 하던 사람들.. 멀리 보이던 움직임 없이 고요했던 대나무 숲.



석남사부도(石南寺浮屠)
8각으로 디자인된 하대석, 중대석, 연꽃 대좌, 탑신. 탑신의 앞면 문호 좌우면에만 신장입상(神將立像)을 배치하였다. 석남사의 도의국사부도는 통일신라 말기의 부도양식을 갖추고 있는 석조예술품으로 보물 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람이 불어준다면...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고 싶었다.




부도탑을 보고 다시 대웅전 쪽으로. 휴일날 경내에는 절을 둘러보는 사람이 많았다.


종무소 서래각 뒤편으로 돌아서면 극락전과 석남사 주지실이 보이고 그 앞에 아담하게 자리한 삼층석탑을 또 하나 마주하게 된다.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번듯한 20세기의 석탑과는 달리, 군데군데 이끼가 끼고 오랜 비바람의 흔적이 배인 낡은 탑이었지만,  세월에 더깨가 입혀진 외관에서 오히려 그 존재감이 마음에 더 다가오는 듯했다. 전쟁 후 새롭게 복원되고 신축된 전각들이 많아 너무 정갈하고 말끔하기만 했던 사찰의 분위기에서 신라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오래된 절의 정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했던 탑이었다.


석남사삼층석탑(石南寺三層石塔)
대웅전 뜰앞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1973년 4월에 극락전 앞으로 옮겼다. 높이 5m 폭 2.3m인 이 탑은 821년에 도의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시 유형문화재 5호.


대숲 그늘 아래 자리하는 비구니 수행도량 석남사는 여성스러움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청기와, 정교하고 화려하게 칠한 지붕의 금단청. 하늘을 향해 올려보니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의 오색이 조화를 이루며 위용을 자랑하는 석남사 전각의 지붕의 처마선이 그 위용을 한껏 자랑하는듯 했다. 범종과 목어를 비치하고 있는 종루도 팔작 지붕의 디테일들이 화려함을 더한다.




"음양수 한 모금은 마셔보고 가야지?" 절을 나오기 전 종루 앞에서 졸졸졸 수조 위로 흐르는 샘물에 바가지를 대고 조카에게 한 모금 권했다. 수조 속에 반짝이는 동전들, 그 일렁거림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이는 바가지로 휘휘 물살을 일어내며 논다.

어느 이의 생각이었을까... 음양수를 떠마시는 수조에 백자 항아리가 담겨있어 소원을 비는 우물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 깊지 않음에도 항아리 속으로 동전을 조준해 떨꾸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지 항아리 안에 담겨 있는 동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석남사 수조(石南寺 水槽)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 만들었는데 네 귀퉁이 모서리의 안과 밖을 둥글게 다듬어 조형미를 살렸다.  고려말에서 조선조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4호



일주문으로 내려오던 길, 조카는 잊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환기시켜주었다. 약속한 대로 계곡가로 내려와 널따란 바위 위에 터를 정해주고 넙적한 돌 두어 개로 자리를 잡아주니 아이는 여기저기 계곡을 뱅러보며 마땅한 돌을 찾아 그 위에 한 층 한 층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어디보자...내가 깔아준 기단부를 제하면 9층 돌탑이 되는 건가. 어린 석공이 만들어낸 석남사지9층돌탑!


무언가 새로운 흔적을 만들어내는 일에  스스럼없는 조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혼잣말을 건넸다.  '절에 들러 저런 작은 돌탑들을 만나면서도 그저 돌멩이 하나 살짝 얹어두는 게 마음 담아두는 일의 다였는데.. 그러고 보니 이모는 한 번도 직접 쌓아 온전히 만들어 볼 생각은 못했던 거 같구나...' 아이는 돌탑을 만들고는 뿌듯해하며 직접 촬영도 하고 소원을 비는 듯 그 앞에 두손도 모아 쥔다. 돌탑 속에 어떤 마음을 새겨두었을까... 나도 함께 합장.

"춥다. 하민아, 이제 휴양림으로 가자." 따숩던 해도 기울고 언니와 난 아이의 손을 잡고 일주문을 나섰다. 푸른 폭포와 은빛 억새꽃을 감상할 수 있는 휴양림으로 향하기 위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上北面), 가지산(迦智山)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 824년(신라 헌덕왕 16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국사(道義國師)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1674년(현종 13) 언양현감(彦陽縣監) 시주로, 탁령(卓靈)·자운(慈雲) 등의 선사들이 중건하였고, 1803년(순조 3) 침허(枕虛)·수일(守一) 선사가 중수하였다. 6·25 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가 1959년 비구니(比丘尼) 인홍 (仁弘)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다시 복원되어 이때부터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었다.  http://www.seoknamsa.or.kr/






* 스밈... 여행이 기록을 정리하며 떠올랐던 곡.

https://youtu.be/0n0-t0KHgwE




그곳을 다녀온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간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싶은 마음에 석남사 이미지들을 검색해보니 '나무사잇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숲길 사진들이 보인다. 이제 석남사에 가면 나무 사이로 데크를 놓아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호젓한 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고 하니 내가 걸었던 절길의 아쉬움이 반가움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부도탑은 '승탑'으로 이름이 바뀌었구나. '울주 석남사 승탑'이라는 안내표지판도 보이고. 수조 속의 항아리는 연잎 모양의 도자기 그릇이 대신하고 있다.


시인과촌장은 낮익은 외관이지만 앞마당과 데크는 조금 더 단장된 모습.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사친출처 : 다음 '가지산 석남사' 이미지 검색




여행길 둘째 날,

파래소, 신불산자연휴양림.. 울산 영남 알프스 첫 걸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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