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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Mar 24. 2024

제주 종달리

종달리 마을



  모처럼 뜻이 맞는 동료 강사 몇 명과 2박 3일의 제주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일단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 더 그렇다. 해외라는 뜻은 바다 밖의 지역을 말한다. 외국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는 제주도다.

  4월 초의 여행 일정이지만, 우리는 2월 중순부터 항공권을 예약해놓고 들떠 있었다. 제주는 꽤 여러 번 다녀온 곳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쉽지 않으니 제주도 여행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여행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취지는 제주 살아보기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동료 강사가 있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되었다. 제주 한 달 살아보기는 나의 버킷리스트 종목에도 있으니 더 기다려졌다. 더구나 일행 중 한 명이 제주도가 고향이라 다른 때보다 더 알찬 여행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여동생이 일 년 반이 넘도록 차도가 없이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그동안 여행은 생각하지도 못했던지라, 이번 제주 여행은 오랜만에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3월 초순 무렵에 동생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받자마자 동생을 면회하러 갔다. 병원에서는 보고 싶은 가족들은 모두 면회하시라고 권했다. 가족들과 같이 몇 시간의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생의 운명 소식을 들었다. 동생은 뇌출혈로 쓰러져 일 년 반을 의식도 없이 병상에 있다 그렇게 떠난 것이다. 6남매 중 하나뿐인 여동생의 죽음은 나에게 너무나 큰 상실이었다.

  동생은 평상시에 “언니, 나는 죽은 다음에 그 좁은 납골 항아리 안에 갇히는 거 너무 답답할 거 같아. 넓은 바다에서 훨훨 날아다닐 거야.”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유언이 되어 넓은 바다에 뿌려주었다. 나는 동생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동생의 영혼을 위해 매일 아침 추모 기도를 했다.


  우리가 계획한 제주 여행의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번거로웠다. 죽은 듯이 조용히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라 차마 가지 못한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여행 날짜를 며칠 앞두고 우리 일행 중에 누군가가 코로나가 걸려 여행이 취소됐으면 좋겠다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했다.     

  약속했던 여행 날이 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간단히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일부러 옷도 밝게 입고, 모자도 쓰고, 팔찌도 하고, 목걸이도 했다. 어차피 여행 가는 것이라면 기분전환이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장례식 이후 처음 하는 외출이었다. 생각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김포공항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생동감이 있어 보여 좋았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김포에서 오후 출발이라 제주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동료 강사 지인의 별장인 황토로 지은 집에 짐을 풀었다. 서귀포 쪽에 있는 종달리라는 마을이었다. 황토방은 이층집이었다. 내가 자는 2층 방으로 올라오니 제주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있었다. 유리창이 3면으로 되어 있는 집이라 누워있어도 바다와 올레길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였다. 멀리 바다 끝 쪽에서 동생이 “언니, 나 여기 있어. 잘 왔어.”라고 반겨주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눈을 뜨니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 뜨는 바다 풍경에 넋이 나가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동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올레길 산책을 했다. 지난밤 보지 못했던 노란 유채꽃이 동네 곳곳에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동생에 대한 추모 기도를 했다. 바다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내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스치는 바람 소리,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파도치는 바닷물 소리, 내 발 앞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동생이 함께 있는 듯 느껴졌다.

  우리는 2박 3일간의 여행 일정을 아주 편안하게 보냈다. 고향이 제주도인 동료 강사의 안내로 알려지지 않은 맛집에도 가고, 평상시에 했던 제주 여행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여유있게 다녔다. 나의 기분을 알아주고 배려하는 것 같았다.

  지인의 소개로 제주살이 할 집도 몇 군데 보러 다녔다. 예쁜 주택들이 참 많았다. 서울에서 돈 많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별장 하나씩은 다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 집들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연세나 월세로 세를 놓는 곳도 많았다. 예쁜 주택들이 아기자기한 마을을 보았고, 바다가 보이는 유리창이 넓은 집도 보았다. 정말 제주도에 와서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쟁 시에는 벙커로 사용했다는 벙커 갤러리에서 하는 유명 화가들의 미술 전시회도 여유 있게 관람했다. 전업 화가였던 동생과 함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 우리가 묵었던 종달리 마을은 참 고즈넉하고 예뻤다. 나는 종달리에 다시 올 것을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마치 동생이 거기에서 나를 기다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종달리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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