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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Mar 22. 2024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아들의 여자친구


  어느 해 가을의 이야기다. 그 당시 TV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에서 윤민수라는 가수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하는 것을 들었다. 노래에서 주는 쓸쓸함이 서늘해진 가을 날씨 같아서 노래의 감정에 푹 젖었다. 

  마지막 가사,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로 끝나는 노래. 계절 탓인지 가슴 절절하게 들려왔다. 노래가 끝나고도 나도 모르게 온종일 그 가사 말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들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인사를 오겠다고 했다.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데, 오래된 나의 지난 시간이 엊그제 일처럼 오버랩되었다. 30여 년 전, 내가 남편 집에 처음 인사하러 갔던 날, 그날의 긴장됐던 순간들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데 시어머님께서 잘 다녀오라고 하신다. 30년 전 지금의 내 나이였던 어머님은 어느새 85세의 노인이 되었다.

  예약한 장소에서 아들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첫인상이 참하고 차분해 보였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을 주는 아가씨였다. 나이는 아들과 동갑내기이고 둘이 잘 어울려 보였다. 그날이 만난 지 500일째가 되는 날이라고 했다. 결혼 적령기에 만난 지 1년 반이 된 여자친구를 엄마한테 인사시키는 것은 내심 아들의 계획된 일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엄마 편하게 잘 대해주세요".라는 부탁이 있었기에 나름 신경을 썼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백화점에서 산 명품 스카프를 나에게 선물했다. 나도 시어머니를 처음 뵙던 날 어머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실크 스카프를 선물했었다. 나의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미소가 지어졌다. 

  두어 시간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모셔다 드린다고 해서 아들의 차를 탔다. 아들이 운전하는 옆 좌석에는 여자친구를 태우고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차를 타고 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앉아있는 아들과 여자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예쁘기도 했지만, 왠지 나는 이방인인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차에서 내려 나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둘은 500일 데이트를 하러 갔다. 출발하는 두 사람에게 좋은 시간 잘 보내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가 탄 차가 떠난 거리를 보며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순간 아들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오는데 갑자기 며칠 전 들었던 윤민수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노래가 떠올랐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라는 그 노랫말이.

  저녁을 짓는 내내 아들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 하나둘 떠올랐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아 벅찼던 기쁨, 종갓집 종손이 태어났다고 온 가족과 친지들이 축하해 주었던 기억, 세 돌 지나 처음 유치원에 보낼 때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싫어 울며 보채는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던 장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반장이 되어 임명장을 받아왔던 일, 대학에 합격했을 때, 하나뿐인 아들을 군대 훈련 보내고 쓸쓸했던 일, 그리고 사회인으로 처음 취업했던 날의 기쁨, 순간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아들은 성장하면서 한 번도 부모를 힘들게 한 적 없이 순탄하게 성장해 주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아들은 완전한 성인이 되었다. 부모의 둥지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제는 품 안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저녁 내내 허전하고 기분이 야릇했다. 서운함도 잠시 나는 아들 앞날의 행복을 빌었다. 30년 전 내가 시어머님을 처음 뵈러 간 날 어머님도 그때 그러셨으리라.


  아들은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후 33살에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지금은 40살을 넘어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큰딸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작은딸은 여섯 살이다. 아들의 여자친구였던 며느리는 시집올 때는 밥도 잘 짓지 못하던 아가씨였지만, 아내와 엄마로서 야무진 주부가 되어 가고 있다. 아들도 가장으로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잘해가며 가정을 꾸려가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나도 60대 중반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아들, 며느리와 손녀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올해 96세이신 시어머니와 우리 부부, 4대가 앉아 함께 밥을 먹을 때면 가족의 그림이 완성된 듯하다. 지금의 이런 소소한 행복이 계속 잔잔하게 흘러가길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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