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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호 Feb 10. 2019

온천을 품은 사막, 모두 ‘보여’드리리

샌버나디노카운티 딥크릭 온천

[기획의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 수증기 덕분에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 몸을 치료하고 가축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백인이 땅을 점령하고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쫓겨나고 그 자리에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서기도 했다. 전현직 기자 출신 부부인 황상호(현 LA중앙일보), 우세린(전 경기방송)이 자연 노천 온천을 다니며 글을 썼다. 충주 유순상 작가가 붓을 들었다.



 “머럴 스탑! 머럴 스탑!”


아따, 뭐를 멈추라는 거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샌버나디노 국유림이 숨겨 놓은 딥크릭 온천(Deep Creek Hot Springs)으로 가기 위해 사유지인 보웬랜치(Bowen Ranch)에 차를 세웠다. 안내소로 보이는 낡은 오두막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백인 아저씨가 소리치며 고개를 내밀었다. ‘아하…. 모터 스탑! 차 시동을 끄라고….’ 나의 영어 뇌세포는 가끔 이렇게 버퍼링이 길다. 차량 시동을 끄고 주차요금 10달러(1인당 5달러)를 낸 뒤 손으로 그려진 지도를 받았다. 까칠한 문지기는 <엘에이 매거진>(LA Magazine)이 혹평했던 총을 가진 그 불친절한 사내인 것 같았다.


인생 최초로 자연 노천 온천으로 향하는 길. 개발이 안 된 100% 자연 모습 그대로라고 하니 ‘야생 온천’이라 함이 옳겠다. 캘리포니아는 환태평양 지진대인 ‘불의 고리’에 있어 마그마를 찍고 올라온 마구 끓는 온천과 마그마 수증기에 데워진 사막 온천 등이 발달해 있다. 캘리포니아 중남부만 해도 일반에 무료 공개된 노천 온천이 40곳이 넘는다. 물론 돈 내고 들어가는 온천 리조트는 셀 수 없이 많다.


사막 야생화, 여름잠 자는 두꺼비, 두 얼굴의 생태


딥크릭 온천은 샌버나디노국유림 모하비사막 북쪽에서 솟는다. 행정구역은 샌버나디노카운티 애플밸리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145㎞. 차로 두 시간 거리다.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에서 접근하기 좋은 온천이다. 크릭은 우리말로 개울, 냇가를 말한다. 이 일대는 건조한 사막 기후다. 샌버나디노 일대 산맥이 서쪽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을 막아 일 년 내내 비그늘이 진다. 이 때문에 이 산을 기준으로 서쪽은 산림이 겹겹이 쌓여 깊고 울창하지만 동쪽은 키 작은 덤불로 구성된 관목지대다. 캘리포니아 자연의 극적인 두 얼굴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차를 세워두고 약 4킬로미터가량 사막 산을 걸어야 온천에 도착할 수 있다. 길에는 사막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다. 붉은 꽃이 그대로 말라 초콜릿 빛깔을 띄고 있다. 그림 유순상

온천 가까이는 딥강이 흘러 강기슭에 버드나무류와 떡갈나무 계열의 활엽수가 자라고, 동시에 침엽수인 피뇬(Pinyon) 등 여러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야생화도 지천으로 피어난다. 기름을 짜 쓰는 연 노란색 꽃 크레오소트(Creosote)와 긴 줄기에 하얀색 꽃이 종종종 달려 있는 장미과의 차미스(Chamise), 빨간 꽃대롱의 펜스테몬(Penstemon), 달빛 꽃밥을 안고 있는 연보랏빛 호아리 애스터(Hoary Aster)가 자란다. 자세히 봐야 찾을 수 있다.


푸른빛이 감도는 이름 모를 검은 새와 각종 도마뱀, 멸종 위기종인 소협곡 두꺼비 ‘애로요 토드(Arroyo Toad)’가 서식한다. 애로요 토드는 몸집이 7㎝로 작은데 날씨가 건조해지는 8월 잠이 들어 이듬해 1월 깬다. 겨울잠이 아니라 여름잠이다. 이곳은 또 송어 서식지이다. 낚시꾼들은 루어로 크기 203㎜ 이상의 송어를 하루 2마리만 잡을 수 있다.


보웬랜치 카우보이 오두막에서 차로 조금 더 들어가 트레킹으로 이어지는 막다른 공터에 주차를 했다. 온천까지는 약 4㎞, 걸어서 50분 정도 거리다. 조금 거친 산책 수준의 난도다. ‘까칠남’이 준 지도가 꽤 정확해 지도 위 기호를 보고도 거뜬히 온천을 찾아갈 수 있다. 길은 경사길 모래 바닥이라 조금 미끄럽다. 방울뱀도 주의해야 한다. 여름에는 낮 기온이 38도를 웃돈다. 물을 충분히 챙기고 모자와 선글라스, 선크림을 준비해야 한다. 겨울철 눈만 피하면 일 년 내내 걷기 좋다.


선글라스가 필수품인 이유


얼마나 걸었을까? 멀찍이 살집이 있는 노인의 뒤태가 보인다. 어라? 그, 런, 데! 아래가 휑하다. 노팬티! 영어로는 ‘버스데이 수트(Birthday Suit)’. 머리에서 범종이 두웅 친다. 노인은 태연히 “굿모닝” 인사를 건넨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를 추월했다. 이번에는 맞은 편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하우아유” 인사를 한다. 아, 아랫도리에 벌건 것이 (심의 문제로 생략….), 말로만 듣던 나체족이다.


트레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체족이다. 캘리포니아 주법 상 공공장소에서의 음란 행위는 금지돼 있지만 산림당국은 일부 지역에서의 나체 행위는 허락하고 있다.


이곳은 누구나 원하면 발가벗고 다닐 수 있는 '선택적 나체 지역'이다. 스타일도 다양하다. 아랫도리를 완전히 개방한 남자, 손수건으로 앞 주요 부위만 막은 남자, 일본 훈도시처럼 엉덩이는 노출하고 앞을 천으로 감싼 남자. 여성은 팬티만 입고 가슴만 노출하거나, 아래위를 모두 벗었다. 그래도 여행자 절반 이상은 속옷을 입었다.


미국 노천 온천에서는 나체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나체에 관한 세계 뉴스를 모으기도 하고 6월 21일을 ‘국제누드하이킹의 날’(National Nude Hiking Day)로 정해 해시태그 ‘#HikeNakedDay’로 나체 행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비영리 조직인 자연주의 행동 위원회(naturist action committee)와 신체 자유 조합(body freedom collaborative)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나체 관련 영화제와 ‘세계 나체 조경의 날’(World Naked Gardening Day), ‘세계 나체 자전거 타기’(World Naked Bike Ride) 등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아무튼 온천에서는 운이 좋다(?)면 남자의 성기에 금속 액세서리로 피어싱을 한 ‘프린스 앨버트(Prince Albert)’도 볼 수 있다. 선글라스가 필수품인 또 다른 이유다.


탕에 누워 오그르르 풀리는 몸에 맥주 한 잔


딥크릭 온천에는 게솥, 기념일, 자궁 등의 별명이 붙은 탕 대여섯 개가 있다. 여행자들이 돌로 물길을 막아 탕의 개수가 때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림 유순상


온천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나무에 해먹을 걸어 낮잠을 자고, 술을 마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온천탕에는 예닐곱 명이 복닥복닥 모여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적당한 웃음과 수다스러운 대화가 커피숍 작은 음악처럼 정겹다. 나도 옷을 벗고 물에 반쯤 몸을 담갔다. “팔다리가 오그르르 풀리는 자릿함이 제법 즐겁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주인공 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호 선상 침대에 누워한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명준이 마신 일제 양주 대신 맥주 한 캔을 땄다. 향긋하고 콰하니 기분 좋다.

 

딥크릭 온천에는 차갑고, 미지근하고, 뜨겁고, 열라 뜨거운 탕 5~6개 있다. 각 탕에는 별명이 있다. 수온이 약 39도로 다른 탕과 2~3m 떨어져 낮은 곳에 있는 ‘게솥’(Crab Cooker)과 큰 암석 가까이에 있는 ‘기념일 탕’(Anniversary Pool), 수온이 26도로 미지근한 편인 ‘자궁’(Womb)이 있다. 온천에 16번째 왔다는 샌디에이고 출신 흑인 친구 저니는 “내가 알기로는 지금 네가 있는 곳이 ‘기념일 탕’이야. 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말이지. 사실 정확히 어디가 어딘지는 여기 자주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야”라고 눙치며 웃었다.


다양한 피부색의 남녀노소가 아무렇지 않게 벗고 다니지만 주위 사람들은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은 옆에 ‘남자 친구’와 ‘남자 사람 친구’가 같이 있는데도 보이는 곳에서 속옷을 갈아입거나 나체로 다닌다. 


온천 옆을 흐르는 딥강이다. 뜨거운 온천수가 이곳으로 이어지지만 제법 물길이 커 물이 차갑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수영을 하다 뜨거운 온천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사진 황상호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팔뚝에 문신한 독개구리와 뱀 대가리. 종아리에 그려진 용과 일본 무사, 팔목에 대충 새긴 낙서 등. 왼쪽 팔뚝에 ‘배울 학(学)’ 자를 새긴 백인 친구 밴은 “여자 친구가 문양이 예쁘다고 골라줬어”라고 말했다. 대학과 관련된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땄고 아직 학교에 있으니 그런 셈이지”라고 겸연쩍어했다. 이 녀석도 알몸이다.


피시티, 미 서부 종단 트레일을 걷다


이곳은 세계적인 장거리 도보여행길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피시티는 미서부 최남단 캘리포니아 국경도시 캄포에서 북단 캐나다 국경지역인 매닝파크까지 4270㎞를 종단하는 도보여행길이다. 여행자들은 보통 4월 중순 남쪽에서 출발해 3주째쯤 이 온천을 돌파한다. 한인 참가자들 말을 종합하면 한인 도전자도 매년 늘어 2018년 기준 약 40~50명이 피시티 길에 올랐다. 그해 한인 중년 남성 한 명이 도보여행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두 번째로 온천을 찾아갔을 때 우리 부부는 피시티를 느끼기 위해 보웬 랜치 반대 방향인 ‘딥크릭 하이킹 에어리어’(Deep Creek Hiking Area) 갓길에 차를 세우고 ‘브래드포드릿지 패스’(Bradford Ridge Path)를 걸었다. 온천까지 4㎞로 1시간쯤 걷다 보면 피시티 구간을 만난다. 그곳에서 다시 온천까지는 320m를 걸어야 하는데, 피시티 전체 구간의 0.00007%다. 피시티 여행기 ‘와일드’로 피시티를 전 세계에 알린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도 전체 구간을 완주한 것은 아니었으니 나도 어쩌면 피시티 여행자라 하겠다. 하하. 다만 이 구간에는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어 길을 잃을 수 있다.

딥크릭 온천에 있는 탕이다. 아침 일찍 도착해 물이 더 깨끗하다. 탕을 휘젓고 다니면 돌에 붙은 이끼가 올라와 탕이 혼탁해질 수 있다. 아내가 목욕을 하고 있다. 사진 황상호


미 서북부 워싱턴 주에서 7월에 출발해 4개월을 걸어 이 온천까지 내려온 여성 피시티 하이커 헬레인을 온천에서 만났다. 그녀가 탕에 들어가기 전 쉰내가 3m 앞에서도 팍 났다. 헬레인 곁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남자 사람 친구 둘이 10㎞를 동행하고 있었다. 남자 둘은 팬티를 입고 탕에 들어왔고 헬레인은 상체를 벗고 온천에 들어왔다. 헬레인은 “대학 졸업하고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피시티 여행을 결심했다”며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매일 감탄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과 고민, 길은 세계의 주제어인가 보다.


잘 보면 온천 어딘가에 ‘트레일 매직’이라 불리는 아이스박스가 있다. 트레일 엔젤이라 불리는 민간 봉사자들이 도보 여행자들을 위해 먹을 것을 넣어 둔 상자다. 온천 여행길에 하이커를 위한 아이스박스를 본다면 배낭 속 먹을 만한 물건이나 유용한 물건을 두고 가보자.


떠날 채비를 하는데 수다스러운 친구 저니가 하루 밤 자고 가라고 권했다. 공식적으로 캠핑이 금지된 지역이지만 산림당국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여기는 누가 청소하고 관리하냐고 물었다. 저니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했다.


“나도 관리하고 너도 관리하는 거지. 여기 모두가 주인이야. 쓰레기도 가져가고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치워야지.”


몸을 충분히 식히고 복귀하는 것이 좋다. 사막을 다시 걸어야 하는데 목욕으로 흐늘흐늘해진 몸 때문에 걷기가 더 힘들다. 특히 딥 크릭 하이킹 에어리어 방향은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야 하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얼음장 같은 가장 큰 탕에 들어가 체온을 낮추고 출발하는 것도 추천한다. 산속이라 해가 빨리 진다는 것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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