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루이스오비스포카운티 패소로블스인
이번 온천 탐방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북쪽으로 3시간, 330km 떨어진 샌루이스오비스포카운티(San Luis Obispo County) 휴양마을 패소로블스(Paso Robles)다. 스페인어로 ‘파소로블레스’라고도 부른다.
패소로블스는 스페인어로 ‘오크나무 길(The Pass of the Oaks)’이란 뜻이다. 오크나무는 코끼리처럼 몸통이 두껍고 가지는 구불구불 꺾여 하늘로 향한다. 엄지손가락 만한 이파리가 풍성해 멀리서 보면 커다란 버섯 같다. 이 땅의 주인이던 아메리카 원주민 살리난(Salinan) 부족은 자신들을 살리난어로 ‘오크나무의 사람’(Te'po'ta'ahl.People of the Oaks)이라 표현했다. 현재 600여명이 이 일대에 살고 있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원주민 작명법에는 철학이 녹아 있다. 한국의 청주(淸州), 충주(忠州), 상주(尙州)처럼 행정편의에 따라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대상자와 공간, 그 사이 관계를 고민해 이름을 지었다. 패소로블스의 원래 명칭은 ‘Elewexe’, 곧 황새치(Swordfish)였다. 차로 서쪽으로 30분 나가면 태평양인데,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우럭(Rockfish), 은대구(Black cod)와 함께 황새치가 많이 잡힌다. 아마도 원주민은 수십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잡아 올리는 황새치를 보며, 강인한 생명력이나 자연의 숭고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료 조사를 하다 지역 언론 <뉴타임스>(New Times)가 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2018년 9월에 쓴 글이다. 미 최고 수준 공과대학인 캘리포니아 주립 공대, 캘 폴리 대학(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에서 기숙사 건물을 신축하는데, 원주민 단체가 투쟁해 기숙사 한 동을 원주민어 ‘Elewexe’(황새치)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운동을 주도한 리야 마라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서양에서는 (지명을) 사람 이름에서 따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간을 설명할 때, 땅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한다. 그 방법이야말로 우리와 자연을 더 잘 연결되도록 만든다.”
그 말대로면, 내 고향 울산의 지명은 ‘고래’라야 마땅하다.
패소로블스는 스페인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이 선교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선교사들은 1796년부터 1833년까지 캘리포니아 남쪽 샌디에이고에서 북쪽 샌프란시스코까지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며 선교를 했다. 말 타고 하루, 걸어서 3일 정도 걸리는 거리인 48km마다 교회를 세웠다. 순례길을 표시하기 위해 선교사들은 길에 겨자씨를 뿌렸다. 교회를 지을 만한 터에는 씨앗을 넓게 뿌렸다. 봄이면 노란색 겨자꽃이 들판에 만발했다.
순례길은 총 966km이다. 캘리포니아 미션 트레일(California Mission Trail)이라 불리던 길은 지금은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 왕의 길)이라고 불린다. 이 길을 따라 녹슨 종이 달린 기둥이 세워져 있다. 지금도 하이웨이, 일반 차도에 외로이 세워져 있다. 순례길이 시작하는 샌디에이고에는 야구선수 박찬호가 뛰기도 했던 메이저리그 야구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있다. 파드레스는 성직자 중 군목을 뜻한다.
패소로블스는 순례길 중간 지점에 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봇짐을 풀어놓고 휴식을 취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현지 부족민을 통해 온천을 알게 됐고 그 주변을 개발했다. 1795년에는 미션 샌미겔(Mission San Miguel)을 세웠다.
온천과 기독교는 인연이 꽤 깊다. 설혜심 교수가 쓴 <온천의 문화사>를 보면, 11세기 유럽 기독교인은 천국에 가기 위해 고향과 나라를 버리고 그리스도 유적지를 따라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온천을 만났고, 온천을 성천, ‘신의 은총’, ‘마술적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초창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앵글로색슨족과 마찰을 줄이기 위해 그들이 성천에 절하고 병을 치료하던 기복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그것이 기독교 온천 숭배로 이어진 것이다.
16세기 들어 토머스 크롬웰이 종교개혁에 나서면서 성물 숭배와 성지순례를 금지했다. 성천이라 숭배하던 온천도 부서졌다. 왕이 아닌 성물을 통해 주와 접촉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후 온천은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야 다시 주목받는다. 종교색은 빠지고 광천수라는 건강 기능이 부각됐다.
‘성천은 종종 ‘천국의 젖’이라 불리며 아주 특별한 치유능력이 있다고 알려졌다. 어떤 병이든지 성천에 가면 완전히 나을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추세였다.’ <온천의 문화사>
패소로블스가 도시로 발돋움한 건 골드러시 개척자들 덕분이다. 19세기 중반 금빛 광풍이 끝나자 외지인들은 새 정착지를 찾았다. 그런 가운데 미 동부 출신인 다니엘 블랙번과 제임스 블랙번 형제가 1849년 이곳에 소를 끌고 와 정착한다. 처음에는 감자와 아몬드, 사과나무를 심고 농사를 지었다. 그 뒤 유황 온천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지를 매입해 1864년 엘패소데로블스호텔(El Paso de Robles Hotel)을 세운다.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온천탕과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그들은 세계 유일한 머드 유황 온천이라며 광고지를 만들어 돌렸다.
셈에 밝았던 블랙번 형제는 이후 패소로블스에 철도가 들어선다는 정보를 듣고 땅을 대거 매입한다. 그러다 1886년 남부 태평양 역사가 진짜 이곳에 들어선다. 형제는 샌프란시스코 투자가들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다니며 3일 동안 바비큐 파티와 마을 투어를 했다. 그해 형제는 투자가들에게 200여 필지를 팔았다.
온천도 대박 났다. 수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오리건, 네바다, 아이다호, 앨라배마주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인구 수백 명밖에 안 되던 마을은 개발 붐을 타고 1889년 2월 시로 승격했다. 샌루이스오비스포카운티의 두 번째 시였다.
재건축에 들어간 온천 호텔은 1891년 3층짜리 엘파소로블스 호텔(El Paso Robles Hotel)로 개장한다. 이때 블랙번 형제와 함께, 열차 강도로 악명 높던 제시 제임스의 삼촌, 드루리 제임스가 투자한다. 후일 제시 제임스가 이 호텔에 은신하기도 해 지역사회에 논란을 일으켰다.
엘파소로블스 호텔은 전 세계 유명인을 끌어모았다. 30여 개 방마다 유황 온천수가 들어가고 최고급 마사지 서비스가 제공됐다. 터닝포인트는 클래식계 록스타로 불리던 피아니스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가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1893년 미국투어 90일 동안 콘서트를 60번이나 할 정도로 바쁜 인물이었다. 손이 멀쩡할 리 없었다. 그런 그가 1914년 1월 손가락 관절염 치료를 위해 이 호텔을 방문했다. 그런데 온천을 한 지 3주 만에 고질병이던 관절염이 치료됐다. 세종대왕도 눈병과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청주시 청원구 초정약수에 행궁을 짓고 117일을 기거했다는데, 패소로블스 온천은 한 달도 안 돼 세계 최상급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치료한 것이다. 그 덕에 이곳은 단박에 세계적 호텔로 떠올랐다.
파데레프스키는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폴란드 공화국 초대 수상을 1년 한 뒤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땅 8km²를 사 포도농장 샌 이그나시오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의 동상은 패소로블스 시립공원 내 패소로블스 역사학회(Paso Robles Historical Society) 건물 앞에 서 있다. 1993년부터 매년 10월 파데레프스키 음악 페스티벌이 이 마을에서 열린다.
그 뒤 이곳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주먹의 영웅’이라 불리던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잭 댐프시, ‘미국 코미디 황제’ 밥 호프 등이 몸을 담갔다. 겨울에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가 스프링캠프로 이용했다. 수억 달러짜리 근육들이 이곳에 와 몸을 씻었다.
호텔은 1940년 12월 화재로 불타고 2년 뒤 현재 모습인 ‘더패소로블스인(The Paso Robles Inn)’으로 탄생했다. 현재는 지역 호텔 업체 마틴 리조트(Martin Resorts)가 1999년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LA타임스>는 이 호텔을 꼭 가봐야 할 미 서부 5대 호텔로 꼽았다.
늘 예약이 꽉 차 있어 원하는 날짜에 방을 예약하기 쉽지 않다. 하루 숙박비가 보통 200달러가 넘는다. 우리 부부는 비수기에다 주말까지 피해 평일 160달러에 하룻밤을 묶었다. 호텔 방에는 마른 꽃잎서 나는 듯한 묵은 시간의 향기가 고가구에서 퍼져 나왔다. 할아버지 손바닥 같은, 검붉은 철제 미닫이손잡이, 팔걸이가 굽은 등받이의자가 오래된 양탄자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2층 테라스에 가 커튼을 반쯤 치고 욕조에 뜨거운 온천수를 받았다. 빛 한 줌이 욕조 끝에 걸린다. 하루만큼은 대통령급 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