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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Aug 27. 2022

행복의 제1 조건


어머니가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처음 입원하시는 날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너무나 속이 상하고 안타까웠다. 엊그제까지 두 발로 걸으신 우리 엄마가 저걸 타고 계시다니. 어머니는 큰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자체는 문제없이 잘 되었는데 너무 고령이시고 쇠약해진 체질에 회복이 큰 문제가 되었다. 회복이 늦어지고 늦어지고 하다 보니 폐렴이 왔다. 폐렴은 노인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병이라 우리 형제들은 하늘이 무너졌다. 중환자실에 일주일이나 계셨다. 우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줄 알고 가슴을 치면서 안타까워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길을 걷다가도 어머니 생각만 나면 그 자리에서 두 발을 쾅쾅 구르곤 했다.


문병을 가면 휠체어 탄 노인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자기가 관심이 있는 데만 본다고 어머니 걱정을 하니 온통 노인분들만 눈에 들어왔다. 노인분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휠체어만 타실 수 있다면.... 목이 돌아갈 정도로 그 노인분을 바라보곤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회복된 결과 이제는 휠체어를 잠깐씩 타실 수 있을 정도가 되셨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보니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실 뻔한 엄마, 하지만 이렇게 휠체어를 타실 수가 있다니! 우리는 감격했다. 감사함이 넘쳤다. 처음 어머니가 병원에 와서 휠체어를 타셨을 때는 그렇게 가슴 아프고 속상했던 순간인데 어려움을 겪고 났더니 같은 상황인데도 이렇게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그때 처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조금씩 회복하시면서 여전히 입원 중이시다. 부디 아프시지 않고 평화롭게 한 일 년 만이라도 우리 곁에 더 계셔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사람마다 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대체로 행복은 기분 좋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내 뜻대로 되면 기분이 좋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어디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어주던가. 전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상일인데 그렇게 보면 행복한 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안 그래도 고생바가지인 내 인생에서 길한 것은 좋은 것, 흉한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갈라놓고 행복을 재보면 행복은 절대적으로 짧고 적다.


행복이 우리 인생에 이렇게 인색하게 구니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슈바이처는 “성공은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행복이 성공의 열쇠이다.”라면서 ‘이것’이 행복의 제1 조건이며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 이것이란 바로 ‘감사’다. 감사는 무엇인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같이 일상의 소소한 것, 이것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내가 조금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면(예를 들어 다치거나 아프다면) 당연한 일이 되지는 못한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아주 무더운 날, 가만히 있어도 날이 푹푹 찌니 짜증이 폭발하여 “더워 죽겠네.”를 연발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보고 계시던 이웃 할머니의 말씀 ‘더워야 곡식도 익지.’하셨다. 참 그렇구나 하면서 끄덕였다. 아이가 방을 너무 어질러서 정신이 없다면 속에서 열이 뻗쳐오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와 지낼 그 방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 아닌가? 감사할 일이다. 며느리가 너무 쌀쌀맞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섭섭해 죽겠다고 생각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 며느리는 그래도 도망 안 가고 자신의 손자를 키워주고 있지 않나? 감사한 일이지. 일을 보려고 나왔는데 주차가 너무 어렵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이럴 땐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갈앉힌다. 그렇지 내가 차가 있다는 거잖아.


무엇인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일에서 감사가 시작되는데 우리는 그게 어렵다. 오래전 돌아가신 임길택 선생님의 시는 이런 우리의 마음에 큰 가르침 하나를 준다.



고마움

          임 길 택

이따금 집 떠나

밥 사 먹을 때

밥상 앞에 두곤

주인 다시 쳐다봐요

날 위해

이처럼 차려 주시나

고마운 마음에

남김없이 먹고서

빈 그릇들 가득

마음 담아 두어요


* 임길택 마지막 시집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닥거렸다. 나는 밥 빨리 달라고 조를 줄이나 알았지, 맛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줄이나 알았지 그 밥상에 담기는 주인의 정성과 공덕에는 관심이 없었다. 감사는커녕 돈 내고 사 먹으니 당연한 일로만 알았으니 내 인생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스스로 집어던진 꼴이 되었다. 내가 내던졌던 행복을 감사한 마음으로 주워 올려야겠다. 이 무더운 날에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원고를 쓰고 있자니 머리도 손가락도 아프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 감사한 일이지. 원고 쓰는 내내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 일이 자꾸자꾸 보인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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