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써로게이트와 인공지능을 이기는 글쓰기

by 이가령

써로게이트는 (surrogate)를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대행자, 대리인 정도의 뜻으로 번역된다. 특히, 2009년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면서 더 널리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는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챗지피티나 퍼플렉시티가 일종의 디지털 대리인이라 볼 수 있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조나단 모스토우가 감독을, 브루스윌리스가 주연을 맡았다. 2009년에서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은 집에 앉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로봇 아바타(써로게이트)를 조종해 사회생활을 한다. 이 로봇들은 젊고, 건강하고,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사용자 본인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없이 외부 활동을 하게 해준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파라다이스 아닐까?



모든 사회활동은 로봇 대리인이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현실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늙어가는 모습으로 방구석 침대에 초라하고 누추한 몰골로 누워 있지만 사회생활은 ‘나를 대신하는 나’가 완벽하게 아름답고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를 누빈다. 사람들은 현대판 늙지 않는 샘물을 마신 셈이다. 하지만 어느 날, 써로게이트가 파괴되고, 사용자 본인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시스템상 있을 수 없는 일로, FBI 요원 그리어(브루스 윌리스)가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써로게이트에 의존하지 않는 ‘저항 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만든 사람은 바로 써로게이트를 만든 라이오넬 캔터 박사였다. 조사 끝에 드러나는 진실은, 이 완벽한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써로게이트를 이용해 안전하고 멋진 겉모습으로 살아가는 껍데기에 취해 있는 동안, 실제 감정과 인간관계는 점점 메말라 간다. 결국, 브루스 윌리스는 전 세계 써로게이트 시스템을 스위치를 내려버린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의 몸으로 세상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는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영화는 로봇에 의지한 완전한 겉모습을 추구한 결과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진짜 삶은 완벽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다.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불완전하더라도 진짜 몸과 진짜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인간다운 진짜 삶이라는 것이다.

영화 《써로게이트》가 전하는 “살아 있는 몸으로 세상과 마주 하라”는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글쓰기, 즉 “살아 있는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라”는 글쓰기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요즘 챗GPT가 기가 막히게 글을 써 주는 시대, 정말 놀랍고 고맙다. 이제는 GPT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끝났다. 이미 대세다. 마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기계가 사람보다 더 스마트하다"라며 걱정했지만,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필수 도구가 되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그 편리함을 얻는 대신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고, 내비게이션 없이는 익숙한 길도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기억력, 판단력, 표현력 같은 인간 본연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기계를 쓰고, 어디부터는 인간이 해야 하는가? 표현은 누가 해야 하는가? 경험은 누구의 것인가?

진짜 글쓰기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자기 삶의 흔들림과 깨달음을 붙잡는 일이다.

GPT가 아무리 잘 써도, 내가 겪은 것을 대신 겪어주진 못한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언어로, 살아 있는 감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 GPT가 만들어주는 글은 유려하지만, 삶의 고민, 모순, 흔들림이 빠진 ‘겉껍데기’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글쓰기는 문장의 매끄러움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감정을 꺼내는 ‘진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글쓰기를 끝내지 않는 한 지속되어야 할 가치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모든 써로게이트를 꺼버린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인간답게 살기를 선택한다. 『인공지능을 이기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표현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써로게이트》는 ‘몸’을 대리인에게 빼앗긴 인간의 이야기이고, 『인공지능을 이기는 글쓰기』는 ‘표현’을 대리인(AI)에게 넘길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책이다.

둘 다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진짜로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짜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치 않는 것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