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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Feb 18. 2016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남의 독자 명 이어주고 얻은 명당    

옛날에 풍수와 부자가 친구 사이였다. 부자가 풍수에게 자기 집안 묏자리를 잡아 달라고 하니 풍수는 우선 적선(積善)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이며 밥이며 다 나눠 주었다. 그런데 풍수가 부자 묏자리도 잡아주기 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하루는 부자 가 마루에 앉아 있는데, 풍수가 어린아이를 한 삼백 명 끌고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부자가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물으니 풍수는, 자신은 죽어서 저승 칙사가 되었는데 마마 걸린 아이들 데리고 저승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부자는 아이들과 요기라도 하고 가라고 하고 부인에게 밥 좀 많이 하라고 하였다. 부인은 그렇게 적선을 해대더니 드디어 미친 모양이라고 욕을 했지만, 손님 대접은 해야 하니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을 차려 주었다. 아이들은 배고프던 차에 하나같이 정신없이 밥을 먹는데, 까치저고리 입은 아홉 살쯤 먹은 아이 하나는 밥도 안 먹고 눈물만 흘리고 앉아 있었다. 부자 친구가 왜 그런가 물으니, 구대독자인데 저승에 가게 되었으니 그 집은 가문이 망하게 생겨서 저런다고 하였다. 부자는 자신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으니 그 중 나이가 같은 둘째하고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풍수는 알았다고 하고 아이들과 밥을 다 먹은 뒤 길을 떠났다. 그때 별안간 옆방에서 쿵 하더니 둘째 아들이 죽어 버렸다. 몇 년 뒤, 부자 집에 하얀 노인네가 하룻밤 자고 가자며 들어왔다. 노인은 부자에게 적선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부자는 그저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하였는데, 노인은 자신이 지술(地術)을 조금 아니 부모를 잘 모시려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였다. 부자는 부모의 묘를 파서 곽에 넣고 노인을 따라갔다. 껌껌한 밤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갔는데, 노인은 어느 큰 마을에 가더니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집을 가리키며 그 집 대청마루에 아버님을 모시면 좋을 것이라고 하고 사라져 버렸다. 부자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가보기나 한다면서 노인이 알려준 큰 집으로 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그 집 어린아이가 손님 세숫물을 챙겨 왔는데 아이는 부자를 보더니 넙죽 절을 하였다. 그 아이는 부자 덕분에 명을 잇게 된 구대독자였다. 부자는 주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하고, 이 집 대청 밑이 우리 아버지 묏자리라고 하니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우리 집 구대독자를 살려줬는데 못할 일이 뭐 있겠느냐며 허락해 주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3, 603-609면, 음봉면 설화7, 적선 끝에 얻은 묘지


이런 이야기들 끝에 흔히,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이 붙어요. 그런데 좀 난감하기도 하지요? 자기 아들 내주고 남의 구대독자 명을 이어주다니요. 민담에서 흔히 얘기하는 ‘아이는 또 낳으면 돼.’라는 사고를 현대 독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요. 아마 당대에도 쉽게 이해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결국 자기 아이도 내버릴 정도의 큰마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요,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최대 가치의 하나였으니,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명당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은 복의 실체를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해요. ‘착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식의 교훈, 혹은 ‘복 받아서 잘 먹고 잘살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내 것을 내주고 나누는 것이 내가 잘사는 길이다.’ 하는 원리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 것을 움켜쥐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쓰기보다 그런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났을 때 진짜 복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나 하나 잘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남을 살림으로써 나도 살리는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진짜 지혜를 이야기들은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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