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나는 토, 일 주말 새벽 스터디카페 청소를 한다. 늘 그렇지만 새벽 기상은 힘들다. 더 편하게 더욱더 자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알람을 꾹 눌러 끈다. 그리곤 화장실로 가서 깊은 잠을 자지 못 차올랐던 소변을 보고 손을 닦는다. 그리곤 정말 눈곱만 뗀다. 기계적으로 자동으로 주섬주섬 청소 작업복을 걸치고 버스카드와 스마트폰, 이어폰을 챙겨 나온다. 봄이 오긴 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꽤 춥다. 얇은 기모 잠바를 걸친다. 젠장 새벽부터 비가 와서 작은 접이식 우산 하나 서둘러 펼쳤다. 새벽 버스들은 도로가 붐비지 않아서 예상보다 빨리 달린다. 발걸음을 재촉해 건물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짧게 인사를 나눈다. 이 일을 한 지 1년쯤 지나니 나도 매번 만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소속감을 확인하는 사이가 된 듯하다. 엘리베이터 7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바를 벗어 들었다. 시작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자질구레한 일까지 손이 많이 가는 청소를 해야 해서 시간 싸움이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2시간 자동 타이머가 째깍째깍 울려대기 시작한다.
맨 먼저 유리문 안 벽에 있는 스위치부터 켜서 카페 공간을 밝힌다. 작업장에서 면장갑을 끼고 청소기와 도구들을 챙겨 나온다. 탕비실 제빙기 버튼과 흡입구 배기구 스위치를 눌러 청소 준비를 시작한다. 플라스틱 종이 재활용 쓰레기통과 일반 쓰레기통에 채워진 쓰레기봉투를 꺼내 새 봉투로 갈아 끼운다. 종이컵도 작은 것과 큰 것 여분을 꺼내 채운다. 커피 찌꺼기도 버린 뒤 닦아 끼운다. 싱크대 하수구와 정수기 주변도 물과 주방세제로 닦아낸다. 입구 노트북과 복사기 주변 먼지를 털고 닦으면 탕비실 주변 정리가 끝난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된다. 청소기의 긴 전선을 풀어 콘센트에 꽂는다. 윙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하면 이내 마음이 안정된다. 청소기 기계음에 콧노래도 얹어 불러본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상 주변 청소를 자동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단순 작업을 너무 사랑한다. 머릿속을 비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들을 수 있고, 내 최애 유튜버의 정치 방송도 2배속으로 들을 수 있다. 가끔 귀 뚫기 영어도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도 청소가 끝나는 2시간 동안 계속 들을 수 있어서 마치 고막 콘서트장에 온 것 같다.
아무래도 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청소기 소음에 묻혀 자동으로 아무 생각 안 하게 되는 이 시간을 너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깐깐한 사장의 지적질 때문에 그만둔다 그만둔다고 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됐다. 깐깐한 사장이지만 1년 넘게 주말 새벽에 카페 개장을 책임질 사람이 없었던 터라 나를 고마워하는 눈치다. 올 설 명절에는 나를 정식 직원으로 인정하는 듯 귤 상자 한 상자를 건네주기도 했다.
시급 만오천 원, 이 동종업계 보수로는 그래도 높은 편이다. 결정적으로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가 됐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운동 삼아 시작하자고 다짐했었다. 새벽 운동도 하고 돈도 받으니 일거양득(一擧兩得) 아닌가. 주말 동안 운동하며 돈 버는 거로 생각하면 나름 버틸 만하다. 그리고 한 달 25만 원 정도 용돈을 받으며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아르바이트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은 수현과 경수가 부른 무슨 팝송이 귀에 박힌다. 알고리즘으로 뜨는 오늘의 노래 모음, 여행지에서 정착하는 느낌은 어떤 걸까 생각해 봤다는 가사도 내게 들어왔다. 흘러 들어왔다 흘러 나가는 가사들. 청소기 흡입구로 책상과 의자 주변 먼지, 머리카락, 지우개, 샤프심, 종잇조각 등 가루들을 빨아들인다. 속이 다 시원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진공청소기 소음이 울려대는 이 시간, 이 시간을 나는 참 좋아한다. 주 5일 내내 바쁘고 복잡하고 분주했던 아동 돌봄 사회복지사, 엄마라는 직업과 역할을 잠시 놓아버린다. 그렇게 나를 비워낸다.
그렇게 100여 개 정도의 책상 주변 청소가 끝나면 다시 책상 위 먼지를 제거할 차례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지우개 가루와 먼지들을 작은 빗자루 쓰레받기로 모아 버린다. 그다음은 책상 소독수를 뿌린 뒤 매직폼과 마른걸레로 닦아낸다. 그다음엔 9개 교실마다 있는 작은 쓰레기통을 큰 쓰레기통에 옮겨 비운다.
책상 위 풍경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다. 책상 위 공간은 사적인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며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중요한 임무다. 책과 교재, 태블릿, 충전기, 시계, 클립, 포스트잇, 약, 치약, 텀블러, 컵, 칫솔, 머리핀, 핸드크림, 각종 사탕, 초콜릿, 음료 등등의 물품으로 어질러진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빠르게 정리를 해내야 한다.
요즘에는 인형 뽑기 매장에서 건져 올린 인형들을 책상 위에 수호신처럼 모셔두기도 하는 것 같다. 입시공부라는 것이 원래 혼자 해야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라 모두 외롭고 힘든 상황을 인형과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그맣고 따뜻한 마음이 드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으리라 이해도 된다. 이렇게 책상 위 풍경은 마치 방 한 칸을 보는 것처럼 저마다의 스타일을 입고 있어서 구경하며 정리하는 재미도 있다. 가끔은 누구누구 이름이 적힌 쪽지와 스티커 사진들을 엿보며 10대들의 유행을 빠르게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일도 1년 넘게 하다 보니 집에 오면 책상 위에 뭔가의 물품이 널브러져 있는 꼴을 잘 못 보고 정리를 해야만 속이 시원한 일종의 직업병도 생겼다. 남의 책상 정리벽이라고 해야 하나, 꼭 남의 책상이 내 책상보다 더 치우고 싶어진다. 내 책상은 왜 그렇게 치우기 싫은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책상 위 쓸고 닦기가 끝나면 모아진 쓰레기를 50리터 종량제 봉투에 옮겨 담는다. 일요일에는 화장실 청소하는 어르신께서 안 나오셔서 화장실 휴지까지 비워야 한다. 그래서 토요일에 청소하다 8시쯤 화장실 청소하러 오시는 어르신과 친해졌다. 화장실 청소는 외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 한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흐르기도 하는데, 어르신께 얼음물 한잔 따로 챙겨드리면 엄청 고마워하신다. 그렇게 청소 동종업계 종사자와 친해지며 소속감을 나누기도 하고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게 된다. 가끔 1층부터 4층까지 복도와 화장실 청소하는 중년 여자분과도 마주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에 가끔 멈춰져 있는 숫자들에도 혹시나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된다. 청소는 혼자 하는 일이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가끔은 좋은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마포 걸레를 물통에 넣어 빨고 짜서 탕비실과 복도를 닦아내면 청소 작업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업무가 마포 걸레질이라서 끝난다는 홀가분함 때문에 리듬을 타면서 걸레질을 할 때도 있다. 역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끝이 있다는 게, 끝이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홀가분하다니 주말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기분 좋은 청량감을 선물해 준다.
몸으로 하는 부업, 청소.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힘겨웠고, 깐깐한 사장 비위 맞추는 것도 힘들고, 시간 안에 빠르게 일을 끝내야 하는 것도 힘겨웠는데, 1년 4개월 차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극복해 낸 것 같아 스스로 자랑스럽다.
누군가가 부업을 찾고 있다면 몸으로 하는 부업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도 정리되고 용돈도 벌고 건강도 찾을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특히나 주어진 본업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나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다. 주말 새벽, 늘어지게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하며 뭐든 늦게 시작했던 그 이전에 비하면, 청소를 시작한 지금은 ‘하루’라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고 길어진 느낌이 든다. 정리하고 청소하고 치우고 닦고 하는 일은 내 영혼의 정리 작업과도 같아서 좀 더 주업과 병행하며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