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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부재 I

by 써니B

나를 있게 해 준, 나라는 생명의 첫 시작을 주었던 부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병든 육신에서 숨과 영혼이 물러간 후 마주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나에게 호령하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던 모습이 아니다. 그저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밀랍인형 같다.


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불과 몇 개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짐 같은 숙제를 남겨주는 골칫덩어리였는데, 막상 그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나는 그를 추억할 방법으로 오랜만에 다시 이 공간을 찾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집증으로 늘 주변을 고통받게 하고 힘들게 했고 불안하게 했던 그가 떠났다.


끝까지 그를 간호했던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여자였다. 그렇게 자식들과 연을 끊은 채 여자와 월세방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그는 4녀 1남 자식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는 가는 날까지 늘 만만한 장난감이자 놀잇감이었던 엄마에게 가까이서 질투를 유발하며 장난스러운 외도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엄마와 황혼 이혼을 하지도 않았다. 엄마 근처에서 보란 듯이 월세 방을 얻어 연금으로 생활비를 탕진했다. 마지막까지 돈과 사랑에 굶주려 냄새를 맡고 13년째 옆을 지켰던 과부 여자와 함께였다.


그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혼자 약으로 버티고 자신은 불사조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죽기 일주일 전 영수증에는 붕어싸만코와 단팥죽과 경기도 양주 인근 커피숍에서 여자와 함께 마셨던 커피가 찍혀 있었다. 그가 중환자실 들어가 있는 동안 들렀던 그의 월세방은 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나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셋이 갔다. 홀홀 단신 자식들과 연을 끊고 생활했던 그 공간은 13년 치 영수증이 빼곡하고 쌓여 있다. 나 이렇게 돈 쓰고 살다 갔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였을까? 그 영수증을 몽땅 챙겨 와서 하나하나 살펴본다. 기록광이었던 그가 마지막날까지 영수증을 쟁여 놓았던 건 무슨 심리였을까? 단순한 루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영수증에서 무슨 단서라도 찾겠다는 심산으로 한 장 한 장 쳐다본다. 엄마한테 그렇게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던 지갑도 카드도, 스마트폰도 모두모두 자식들 손안에 와 있다.


벽에 걸려 있던 가지런한 바지와 셔츠, 모자들, 냉장고 냉동실에 가득 차 있던 붕어싸만코, 공과금 용지들이 가지런히 들어있는 테이블 아래 서랍에서 그의 유품이 될지도 모를 충전기 하나를 꺼내 왔다. 충전기가 뭐라고 그 많은 충전기들을 뒤로한 채 현재 나는 그의 충전기로 내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 기억 없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걸까? 살아있을 때는 무덤덤하기만 했던 감정이, 그의 죽음 뒤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늘 엄마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자유를 구속하고 자신이 했던 바람을 피울 거라는 편집증적 각본으로 사람들을 꿰맞추며 힘들게 했던 사람. 고막이 터지고 피투성이인 엄마를 데리고 나와 세상에 많은 십자가 무덤 같은 달동네에서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와 맞서 싸웠다. 어릴 때는 알 수 없는 그의 명령과 폭력과 화가 무서웠지만, 조금씩 그의 횡포를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바로 밑에 동생과 함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맷집이 길러져서일까? 그에게 알 수 없는 귀싸대기를 맞은 이후로 나는 그렇게 무서울 게 없어진 상태로 그와 맞서게 되었다. 그때 나는 무자비한 그의 폭력에서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 십자가를 내려다봤다. 달빛 아래 무수히 빛났던 빨간 네온 십자가. 마치 무덤 같기도 한 그 십자가를 보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기도를 했었다.


그렇게 사라지기를 바랐던 사람인데, 이제 이 공간에서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인데. 또 불현듯 그가 생각이 난다.


직장 동료 아들 결혼식에 갔는데, 신랑신부보다 유난히 눈에 뜨이는 건 결혼식에 온 아빠들 모습이었다. 나도 내 결혼식에 아빠와 같이 손을 잡고 남편에게 건네졌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가부장적 결혼 전형이었다고 스스로 싫어했었던 장면인데, 지금은 그때 그렇게라도 역할을 부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거마저도 안 했다면 별로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게 부라는 존재 자체, 역할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인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뒤죽박죽인 내 기억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이름 붙여보고 싶다. 나는 미치도록 미워했던 가정폭력 가해자 그를 그리워하고 있나? 그가 사라진 지금은 많은 것이 해소되고 해결되고 정리되어서일까? 그렇게 밉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망나니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인데도, 조금 남아 있는 좋았던 기억을 하나둘씩 떠올리고 앉아 있다.


그의 수첩에서 발견된 가지런하고 멋진 글씨체로 휘갈겨 쓰여 있던 자식들의 이름들,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까슬까슬했던 턱수염을 내 뺨에 비벼댔던 순간, 글쓰기 수상식에 참여한다고 같이 가며 바라봤던 바다같이 크게만 느껴졌던 서울 한강의 모습, 자식들 상장을 가지런히 모아두었던 클리어파일들, 미국 갔다 가져왔던 팝콘 튀김기와 필름망원경 같은 신문물과 종합과자선물세트들. 그래도 좋았던 기억들이 있기는 하네. 내 어릴 적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제는 악따구니 치며 싸우는 그의 모습을 볼 일도 없는데, 나는 지금 그를 추억하고 있다. 더 이상 볼 일 없다는 부재감이 이런 좋은 감정을 떠올리게 하다니 아직도 내 감정의 바닥을 알 수가 없다.


'아빠 장례식 가면 울지도 않을 거야. 잘 죽었다고 기뻐할 거야.' 늘 그렇게 다짐했건만, 내 감정은 어느 곳에도 숨지 못하고 도망가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임종은 나와 막내 남동생이 지켰다. 그냥 그렇게 무뚝뚝하게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힘겨워하던 부의 마지막 한 번의 숨이 빠져나간 뒤 그래프를 그리던 곡선이 일자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데도 TV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구나 싶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워진 그의 손과 발을 만져볼 뿐이었다.


'마지막이 이렇게 짧은 거야? 이렇게 간단한 거야?' 양쪽 귀가 들리지 않던 그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가 호흡을 하며 온몸으로 발작처럼 움직이려고 했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그와 마주쳤던 또렷한 눈동자가 아직 그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연명치료거부에 서명을 했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가 살고 싶다고 몸부림친 거 같아 마음이 계속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데, 삶의 끝을 함께 마감하는 중환자실 의사는 처음부터 그의 끝을 알고 있는 거 같았다. 나에게 하나씩 하나씩 힌트를 주면서 마지막을 대비하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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