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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Feb 17. 2018

드라마 '마더'와 가족의 의미

서울여자 도쿄여자 #47

서울여자 경희 작가님


한국은 설을 쇠고 있겠죠? 일본은 음력설을 쇠지 않아서 평범한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설하면 따뜻한 가족과 풍성한 음식과 함께 명절증후군 같은 단어도 떠오릅니다. 명절이 지나면 업데이트되는 명절 후 이혼율 증가 기사는 이제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일드 <마더>의 학대받는 여자아이와 선생님. 이들은 바다를 보고 둘이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운명처럼.


일본드라마 '마더'가 한국판으로 방영중이라죠? 작가님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일본에선 2010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되었습니다. 학대받고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 선생님. 그러나 호적도 없고 실제 부모도 아닌 선생님은 아이에게 아무리 좋은 엄마라도, 사회적으로 볼 때는 유괴범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인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어린딸을 쓰레기통에 버린 친모, 유괴범이라 불리지만 아이를 구한 선생, 도대체 누가 더 '마더'라는 이름에 가까울까요? 드라마의 작가인 사카모토 유지가 굳이 '오카상(일본어로 어머니)'란 단어를 쓰지 않고 영어로 '마더'라고 표기한 것은 대지를 의미하고 더 큰 관대함을 의미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마더 테레사의 그 마더 말이죠.


참, 드라마 '마더'를 만든 작가는 사카모토 유지라는 인물입니다. 67년생인 그는 19살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인드라마작가 대상을 받고 후지티비 계약 작가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아버지라 불렸고, <도쿄 러브스토리>라는 최고 시청율 32%를 올린 효자 드라마를 완성시킵니다. 그는 그 후 청춘물 연애물 학원물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그의 중심은 연애 트렌드 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요 몇년 '마더'를 비롯해 가족을 테마로 한 드라마를 쓰고 있습니다.

'마더'가 방영되던 시기에 그는 NHK의 토요 드라마도 담당합니다. 즉 같은 시기에 두가지 드라마를 쓰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는 '마더'와는 다른 탈세자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물 '체이스-국세조사관'입니다. 


'체이스'의 주인공은 냉혹한 세금 컨설턴트 무라쿠모입니다. 무라쿠모는 일본 부자들의 돈을 다른 나라로 뺴돌려 탈세를 돕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인물입니다.그는 부자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까지 쉽게 빼앗습니다. 그렇게해서 무려 6천억엔의 탈세를 도왔고, 자신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겼습니다. 아이를 상속세가 없는 나라에서 낳아 탈세하는 법, 비행기를 폭파시키는 법, 가짜 금궤를 진짜로 바꿔오는 법 등등 기상천외하고 위험한 방법들로 그는 탈세를 성공시킵니다.


엄마에게 팔을 잘린 후 냉혈한이 된 무라쿠모를 연기하는 배우, 이우라 아라타.


돈 이외엔 믿지 않는 무라쿠모. 그는 어릴 때 엄마에게 버려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쪽 팔이 잘린채로. 드라마 마지막 편에서 무라쿠모는 금괴의 비밀번호를 들고 엄마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엄마는 당신을 모른다며 문도 열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서스펜스 드라마지만, 속내는 가족입니다. 혈연관계에서 구원받지 못한 남자의 인생은 외롭고 가혹합니다.


가족 이야기를 해오던 사카모토 유지는 올해 첫 드라마도 가족으로 테마를 잡았습니다. 지난 1월 부터 방영중인 <아노네>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피씨방을 전전긍긍하는 19살 소녀와, 잘 키운 딸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우연히, 하지만 운명적으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경도의 발달장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하리카(히로세 스즈)와 딸에게 버림받은 엄마(다나카 유코)

경도의 발달장애가 있는 '하리카'. 부모는 하리카라 어릴 때 고아원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학대를 당한 하리카는 기억을 부정하며 살게 됩니다. 사회로 나왔지만 오갈 곳 없이 피씨방을 오갑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삶입니다. 

60대의 '아노네'는 인쇄공장 안주인입니다. 남편은 사망했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 낳아온 딸을 애써 길렀더니 '낳아준'엄마가 찾아오자 딸은 가출해 버립니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친엄마가 아니었다는 배신감 때문입니다. '아노네'는 우연히 남편이 만들던 위조지폐를 발견하고 맙니다. 이 위조지폐가 '하리카'와 '아노네'의 운명적 만남을 이어줍니다.


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버림받은 하리카에게 잠옷과 잠자리를 내주는 아노네. 하리카는 이불 안에서 잠옷을 입고 자보고 싶은 꿈을 드디어 실현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가 함께 이를 닦습니다. 가족이 함께 이를 닦는 일상적인 풍경이야말로 사카모토 유지가 말하는 행복한 모습입니다. 


현재 일본은 30대의 절반 이상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현재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남성의 23%, 여성의 13%라는데, 2035년에는 미혼, 이혼, 사별 등을 아울러 혼자 사는 사람이 일본인구의 50%가 될 전망입니다. '초솔로사회'라 불리는 사회가 코 앞에 닥쳐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과연 혈연관계만이 가족인가를 묻는 사카모토 유지의 발상은 근미래적이기도 합니다.


혈연과 가부장제란 전통적인 가족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연대하라고 그는 말합니다. 너를 인정해주는 사람, 네가 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이들을 찾고, 그 틈에서 성장하라고. 


주인공의 이름이 '아노네'인 것이 특징적입니다. 일본에선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아노네'라고 말합니다. 저기, 있잖아, 정도의 의미예요. 


명절에 큰집에 가면 일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어르신들이 질문공격을 합니다. 하지만 사카모토 유지는 질문공세를 하는 사람말고 "아노네(저기 있잖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또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찾아서 연대하라고 말합니다.


작가님은 명절 증후군은 없으신가요? 혹여 있으시다면 '아노네'로 시작해서 풀어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혈연관계는 아닐지라도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이에게. 가족이 아니더라도 더 튼튼한 인연이 맺어질 것이기에.

 

다 같이 이를 닦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것이란 메시지를 주는 장면. 이를 닦는다, 즉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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