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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Nov 04. 2019

떡볶이가 뭐라고

-실리지 못한 글1, 떡볶이 금지령-

2014년에 돌아가신 엄마와 도쿄를 추억하며 <엄마의 도쿄>란 에세이를 펴냈다.

애 셋을 키우다 보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벌써 5년이 지나 있었다.

5년만에 새로 펴내는 에세이는 <떡볶이가 뭐라고>다.

해외에 살면서 떡볶이에 대한 그리움을, 한껏 담아봤다.

책에는 실리지 못한 원고가 있어서 여기 담아두려고 한다.

과거의 한국이라면 조금더 가깝게 느껴졌겠지만, 민주주의 한국사회에선 이미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

금지에 대한 엽편소설이다. 그리하여 본문에서 잘린 글을 실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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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금지령


 모든 빨간색을 금하라. 시작은 그러했다.

 고 3생일에 반 친구에게서 빨간 립스틱을 선물 받은 김지은 학생은 그 립스틱을 어디에 감춰야 좋을지부터 생각했다. 올 겨울 빨간 울코트를 장만하려던 김지은 학생의 담임, 최유리 교사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돈이 굳었다며, 그 돈으로 스테이크라도 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주말이면 빨간 구두를 신고 외출을 즐기던 최유리 교사의 절친 양지우 씨는 빨간 구두 클럽 회원들끼리 모여, 시위라도 열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중이었다.

 누군가는 빨간색이 성을 상징하는 색이기에 금지되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이는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선언한다며 민주주의 사회라면 20년은 전에 빨간색 금지령이 내려졌어야 한다고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남녀 평등을 위해서라면 여자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파란색이 남자를 상징한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남녀 모두 파란색으로 통일하면 그만이라고 일침했다.

 아주 오래전 동화인 빨간 구두를 꺼내와 빨간색은 옛부터 신을 노하게 만드는 색이었다고 신이 나서 떠드는 이도 있었다.

 김지은은, 최유리는, 양지우는 처음엔 빨간색 대신 분홍색을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빨강을 잃는 것은 아쉽지만, 이런 바보 같은 정책이 계속될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고, 곧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 전망했으며, 빨강을 대신할 색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들이 어리석음이 드러나고 만다. 빨간색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까? 주황색은 빨간색에 속할까 노란색에 속할까? 벽돌색이나 갈색은 또 어떤가? 티브이에선 빨간색의 범위를 논하는 방송들이 잇따라 시청률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빨간색 금지령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분식점이었다.

 분식점 매상 1위는 말할 것도 없이 떡볶이다. 빨간색 금지령이 내려진 후, 떡볶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치즈를 넣거나 카레를 넣거나 짜장을 넣은 떡볶이들로 각 분식점들은 고민의 결과를 내놓았다. 무난한 간장 떡볶이로 대처하는 곳도 여러곳 되었다. 

 서울 신설동 132번지의 빨간 떡볶이집 주인 손원주 씨는 상호를 바꿔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는 시위에 나가기도 했고, 트위터에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리트윗이 계속 되었지만, 간간히 법을 지키라는 명령조의 댓글에 가슴이 상하기도 했다.

법을 지키면 굶어 죽어도 되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며, 빨간색은 불온하다고 댓글을 다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손원주 씨는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 팔까도 고려했다. 간장 떡볶이집으로 할까? 하얀 떡볶이집? 까만 떡볶이집? 불고기 떡볶이집? 그는 오래 고민했지만 어떤 상호를 붙여 봐도 빨간처럼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하여, 그는 밀어부치기로 했다. 잡혀 가는 한이 있어도 빨간 떡볶이를 팔아야겠다는 일념하에 독립투사라도 된 듯 열심히 떡볶이를 볶았다. 서울 시내에 여전히 빨간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다는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금세 퍼져나갔다. 김지은 학생은 단짝인 박수지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녀들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빨간 코트 대신 스테이크를 먹겠다던 최유리 교사는 절친 양지우 씨를 동반해 이곳에 들렸다. 그들은 무려 두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가게 안에 자리를 틀 수 있었다. 빨간 떡볶이가 사라진 거리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는 빨간 떡볶이 가게는 그곳이 유일한 까닭이다. 양지우 씨는 빨간 구두를 가져와 떡볶이를 먹을 때만 슬쩍 신었다. 빨간 구두를 신고 먹는 빨간 떡볶이는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최유리 교사는 값이 세 배나 뛴 떡볶이 값을 치르면서도 만족스러웠다. 

 김지은 학생이 올린 사진이 불펌 되어 여기 저기 사이트를 돌기 시작했다. 빨간 떡볶이는 이제 체제에 대항하기 위한 이들의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창에 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 어떻게 하면 빨간 떡복이를 지켜낼 수 있을지, 손원주 씨를 지킬 수 있을지 갖가지 방책을 내놓았다. 김지은 학생과 박수지 학생은 어느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왜 빨간 떡볶이를 먹었느냐?”고 추궁받지 않을지 늘 불안했다. 김지은 학생의 성적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박수지 학생은 그러게 왜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느냐며 김지은에게 따지다가, 우리 당분간 모르는 척 하자고 덧붙였다.

 정부는 빨간색 금지령은 떡볶이를 덜 먹게 해서,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자신들의 아이디어였다며, 덕분에 떡볶이 매출이 떨어져 국민 건강이 향상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유리 교사는 미심쩍었다. 양지우 씨도 손뼉만 칠 수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말이지 국민들의 체중이 평균까지 뚝 떨어졌고, 양지우 씨 자신도 어느새 3킬로가 감량되어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양지우 씨 어머니가 “얘, 요즘 제법 옷태가 난다. 우리 정부가 아주 잘 하네. 우리 딸, 다이어트도 시켜주고.”하고 할 때마다 양지우 씨는 눈썹을 찌푸렸다. 떡볶이가 금지된 사회에서 살아야겠냐며 어서 탈출하자고 단호하게 말하던 절친 최유리 교사가 떠올랐다. 양지우 씨는 시험에 탈락해, 교사가 되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최유리를 볼 때마다 부러우면서도 그 당당함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지우 씨가 최유리 교사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이유는 그 당당함과 현명함 때문이었다. 양지우 씨는 얼마전 한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빨간색 관리자’가 그녀의 새로운 직함이 될 것이다. 빨간색 금지령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경고장을 발송하는 일이 그녀의 업무가 된다. 그녀는 혹시 직장에 나가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빨간 떡볶이만은 지켜줘야겠다고 주먹을 쥐었다. 빨간 구두는 일단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기로 했다.

 고추 농장도 난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모든 고추를 풋고추 상태에서 출하해야 했고, 파란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백방으로 방법을 찾으러 다녔다. 풋고추로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을지 다들 불안해했지만, 그럭저럭 그들은 고추를 말리고 시퍼런 고춧가루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초록색 금지령이 내리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떡볶이 금지령이 내려진다면, 몰래 숨어서 떡볶이를 제조하는 사람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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