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지 못한 글2, 어떻게 쓰나요?-
조만간 에세이 <떡볶이가 뭐라고>가 출간됩니다.
본고에서 잘린 원고를 맛보기로 실어둡니다.
-------------------------------------------------------------------------------------------------------------
어떻게 쓰나요?
어떻게 쓰나요? 그렇게 묻고 싶은 한국어가 한두 개가 아니다.
어릴 때 한 번쯤은 헤매던 단어가 ‘떡볶이’가 아닐까?
발음이 떡뽀끼니까, 떡뽁이가 아닐까? 떡뽁기는 어때?
아냐, 볶는 거니까 볶다를 쓰겠지. 명사형을 하려면, 기로 끝맺는다 치고, 떡볶기가 아닐까?
그런데 정확하게는 ‘떡볶이’라고 한다.
국어 사전에 따르면 ‘볶이’는 볶아서 만든 음식이고, ‘볶기’는 튀기는 조리법을 말한다. 같은 명사지만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튀김’과 ‘튀기기’같은 거겠지. ‘놀이’, ‘놀기’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한국어는 어렵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한국어의 메뉴판은 제각각이어서 때로는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설렁탕과 설농탕, 주스와 쥬스, 초콜릿과 쵸콜렛, 찌개와 찌게, 얼음과 어름.
발음은 또 어떤까?
신촌과 신천을 일본 학생들이 구분하려면 최소한 1년은 걸린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알까? 아니 1년이 뭐야, 아무리 해도 결국 구분하지 못하는 사태는 발생한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귀는 금방 트일 것이고, 이 두 단어를 구분하지 못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테니까.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그렸다. 자진해서가 아니다. 초등학생 겨울방학 숙제에는 그림 그리기가 하나쯤 들어있는 법이다. 스케이트장을 둘러싼 노점상들 중에 떡볶이 집을 그려넣고는 떡볶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해 오래 망설였다. 국어사전을 찾아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엔 ‘볶이’와 ‘볶기’를 구분하지 못해, 고민이 많았다.
떡볶이일까. 떡볶기일까.
누가 나에게 ‘놀이’와 ‘놀기’가 다르듯 ‘볶이’와 ‘볶기’가 다르다고 한 마디만 해주었다면 그 의문이 순식간에 풀렸을 텐데.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볶이’와 ‘놀이’를 예로 들면, 대충은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들은 한국에 가면 떡볶이를 자주 먹고, 놀이 동산에도 간다. 어린 시절에는 인형놀이를 했다고 하며 요즘은 한국 가서 놀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문장들을 쓰며 한국어의 묘미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떡볶이는 맛도 있지만, 한국어 공부에도 유용한 단어다. 볶이와 볶기를 구분하게 해주고, 놀이와 놀기를 나눌 수 있게 돕는다. 구이와 굽기가 다르고, 먹이과 먹기가 다르다는 것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다.
이제 떡볶이라는 단어를 쓸 때 주저하지 않는다. 음식인지 볶는 행위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전은 인터넷상에도 있어서 언제든지 쉽게 검색을 할 수 있다.
한국어는 매력적이다. 떡볶이만큼 오묘하다. 도저히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알긴 아는데, 알면 알수록 어렵다.
새해가 빨리 오면 좋겠다.
새해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위 두 문장의 차이를 쓰세요, 와 같은 문제가 나오면 대부분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내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니던 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묻는다면, 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한국어의 오묘함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조금 대충 만든 떡볶이가 그리워진다. 한국어를 대충 쓸 수 있는 대범한 사람들이 다소 부럽기까지 하다. 때로는 대충 가야할 때가 있다. 때로는 제대로 챙겨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아무렴 어때, 일단 한 숨 돌리자. 떡볶이를 먹고 나면, 내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니던 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먹은 떡볶이, 내가 먹던 떡볶이, 내가 먹었던 떡볶이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