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나의 소녀시대(15)
88올림픽을 한달쯤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해 강변가요제는 더 뜨거웠다. 요즘은 기획사가 아이돌을 키우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를 하는 걸그룹이나 보이그룹들이 많은 시절이지만 당시엔 MBC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가 가수 데뷔의 첫 걸음이었다. 주현미, 이선희, 유미리, 박미경이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했고, 노사연, 배철수, 신해철, 유열, 조하문 등이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다.
1988년 8월 6일에 남이섬에서 열린 제9회 MBC강변가요제 결선, 사회는 지금은 아이돌 프로듀서로 전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와 정혜정 아나운서가 맡았고 총 12팀이 출연했다. 그해에는 특별히 인기 연예인들이 12팀의 응원단장으로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드라마 <인간시장>에서 장총찬을 연기해 급인기를 모은 박상원, 여고생 가수로 스타덤에 오른 이지연, 개그맨 김정렬과 박미선도 출연했다.
1988년 예선을 돌파하고 본선에 오른 참가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매너를 자랑했다. 6번 참가자였던 박성신은 이 대회 출연 후 ‘한번만 더’라는 히트곡을 탄생시키는데, 강변가요제에서는 ‘비오는 오후’로 감미로운 목소리를 뽐냈다. 7번 출연자는 박광현이었고, 3번은 그해 금상을 수상한 ‘슬픈 그림같은 사랑’의 이상우였으며, 징을 들고 나와 한국적인 음악에 완벽한 하모니로 ‘소낙비’를 부른 소나기가 동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12번 참가자 이정아는 ‘떠나간 후에’로 은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쟁쟁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그해 대상을 차지한 이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가수 이상은이었다.
세일러 칼라를 비롯해 칼라가 큰 블라우스가 유행했던 1988년, 강변가요제에 등장한 여자 대학생들도 가장 유행하던 빅 칼라 블라우스를 입고 등장했다. 박성신은 세일러복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이런 패셔니스타들 속에서 흰색 배기 팬츠에 훌렁한 남방을 걸치고 나온 참가번호 11번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1학년 이상은은 패션 센스도 남달랐지만 노래 제목도 독특했다. 이상은의 응원단장 김정렬도 사회를 본 이수만도 ‘담다디’ 대신 ‘반바지’로 발음해 웃음을 자아냈다.
시종일관 진지한 무대 분위기를, 이상은은 등장하자마자 바꿔버렸다. 방방 뛰어다니며 자신의 젊음을, 자신의 당당함을 자랑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묘한 매력과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는 그 거침없음과 긴장을 일절 하지 않은 듯한 흥이 넘치는 무대 매너에 티브이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서울의 어느 마을에서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나는 이상은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느 여성 가수가 저렇게 자유롭게 제멋대로 신나서 뛰어다니며 노래를 했을까. 대체 누가 율동도 무용도 아닌 막춤을 흥이 나서 출 수 있었을까.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날 티브이 앞에서 눈 하나 깜빡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나는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짧은 머리야 당시에도 유행했지만 고분고분함이나 순종이란 단어보다 능청스러움과 자유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젊은 여성을 말이다. 물론 여성도 털털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그래도 되는 걸까? 그래, 그래도 되는 거였다. 이상은이 그런 자유를 보여주었다. 껄렁껄렁한 태도로 시종일관 누구보다도 신이 난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 키가 훤칠하고 거리낌이 없으며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당당한 이상은, 그는 당장에 나의 우상이 되었다.
탬버린을 들고 나타난 이상은의 개성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세대의 자유로움을 대변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방송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여성 가수가 분명히 한 세대를 풍미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담다디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아무 의미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누구나 한번쯤 지어보이는 억지 웃음이나 억지스러운 부끄러운 표정 같은 것을 그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담다디에는 의미가 없으며, 신나게 부르고 신나게 호응하면 그만이라는 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모습도 너무나 멋있어서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노래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담다디는 마치 후크송처럼 머릿 속에 콕콕 박혔다. 게다가 이상은은 대상을 받은 후,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라는 이수만의 질문에 부모님이나 친구 대신 “마이클 잭슨”을 외쳤다. 이렇게 황당하고 당당한 가수가 지금까지 있었던가!
한겨레 신문은 이상은을 ‘가요계 휩쓴 싱그러운 선머슴애’(1987년 12월 24일)라고 칭했고, 그해 FM청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은 곡이 ‘담다디’였으며, 응원가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8월 8일에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 ‘담다디’는 그해 라디오에서 500번 이상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이상은은 이듬해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대학생 역으로 이규형 감독의 영화 <굿모닝 대통령>에 출연해 배낭 여행의 묘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음악 프로 <젊음의 행진>의 사회자로도 상큼 발랄한 매력을 발산했다.
담다디를 불렀던 싱그러운 가수가 이제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이상은은 자유롭다.
“삶은 여행이고 언젠가는 끝이 나니까” 더 강하게 더 열심히 걸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역시 이상은답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