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끝물, 애 셋 둔 아줌마의 도쿄 전직 일기(1)

전직 활동을 시작하다

by 김민정

들어가면서


2025년 12월 1일 전직 활동을 시작하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일본에 왔고, 운 좋게도 일본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운은 그것 단 한 번뿐이었다. 복권에 맞아본 적도 없고 취업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일본은 거품경제가 무너진 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였고, 이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30%는 정규적으로 취업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비정규직을 허용한 시기이기도 했기에 수많은 학생들이 비정규직으로 스타트를 끊었고, 신졸자만 공채로 받아주는 일본에서 한 번 비정규직이 된 학생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40대에서 50대가 되었다고 한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나는 취업빙하기 세대이며, 고학력 워킹 푸어다. 일본에서 게이오 대학을 졸업했고, 그 당시 내가 나온 학부는 게이오 대학에서 의대나 법대 수준으로 경쟁이 치열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도쿄외대에서 대학원까지 나왔다. 하지만 나에게 일자리는 없었다. 대학원에 다니며 아이를 낳게 되어, 조교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고, 결국 대학에 취직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조교를 넘보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막말로 ‘보따리 장사’가 되었다. 시급을 받는 비상근 강사로 일하고 있다.

취업빙하기 세대 고학력 워킹 푸어인 나의 시급은 1시간 만엔 이하이다. 시급만 보면 평균 시급의 대여섯배는 된다. 하지만 수업이 없으면 월급이 나오지 않으며 비상근직은 사대보험도 없어서 내가 벌어 나 혼자 건강보험이며 연금 등등을 내야 한다. 학교가 나에게 사대보험과 관련해서 뭔가를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다 보니, 시간강사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조금 더 적은 시급을 받고 일할 수도 있지만, 시간강사의 시급이 더 높다보니 시간강사를 택하는 것이다. 또 일본의 경우, 남편의 부양가족이 되면 돈을 벌어도 연금이나 건강보험비가 남편의 회사 부담이 되는데, 부양가족의 조건은 연간 150만엔 이하로 버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시간강사에 통번역, 라디오 출연 등의 수입이 있다보니 150만엔보다는 많이 벌기 때문에 남편이 부양가족이 아니다.

얘기를 정리해보자. 나는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다. 아이도 있어서 주 3-4회 학교에 가서 시간 강사를 하며 먹고 사는 일이 라이프 스타일과도 딱 맞는다.

그런데, 평생 시간 강사를 하며 살기엔 뭔가 내 능력이 좀 아까운 것 같다. 그런 오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부려볼까 한다. 쉰이 되기 직전이니까. 쉰보다는 마흔 아홉이 나을 것 같아서. 그리고, 아이들이 크면서 생각보다 드는 돈이 많아서 내가 방학엔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일단 직장을 한 번 구해볼까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직을 향한 나의 행보가, 발버둥이 될지 발걸음이 될지 그 모든 것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도전이란 것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12월 1일

마흔 아홉 아줌마가 전직을 위해 한 일

1) 전직 사이트 등록

2) 전직 일기 시작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