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의 문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첫인상은 말 수가 적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와 친해지고 나서 말이 많아졌지만 대부분이 과학적 지식이나 세계정세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편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뜸을 들인다. 계획을 세워보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결론이 나야 일을 시작한다. 일단 시작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점검하느라 걸음이 느리다. 그러나 인내력이 좋은 탓에 끝까지 마무리해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여러 번 감탄했었다. 얼마 전 그의 MBTI 성격이 INFJ 임을 알게 되었다. 같은 날 해본 성격 검사에서 나는 INFP에 속했다. 서로 겹치는 글자가 많은 걸 보면 성격이 비슷해야 할 텐데 막상 함께 해 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 나는 즉흥적이고 비 계획적이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여행할 때도 그렇다. 나는 목적지와 숙소만 정해두고 떠나는 편이지만 친구는 세세한 장소와 동선까지 계획을 짜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점, 사생활은 SNS에 올리지 않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조용히 혼자 있기를 즐긴다는 점 등은.
얼마 전 친구는 내가 쓰는 소설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라 내심 반가워서 나는 내가 소설 쓰는 방법에 대해 한참 열을 올려 떠들어 댔다.
"일단 주제를 정하고, 소재를 정하고 인물을 정하고, 인물에 대한 뒷 이야기를 짜고, 배경을 짜고, 성격을 짜고......"
듣고 있던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설은 언제 쓰기 시작하는 거야?"
"바닥 공사를 잘해야지 건물이 올라가는 거잖아. 소설도 마찬가지야. 배경이 탄탄해야 돼. 그래야 이야기가 재밌고 쫀득하지."
"오오, 그래?"
친구는 정말 놀란 얼굴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매사 즉흥적이던 내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의 토대를 짓고 올리는 모습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그거야...... 소설 쓰는 일이니까 그렇지."
친구는 내 변명에 웃으며 말했다.
"너 답지 않은데. 그렇지만 소설가 다워서 보기 좋아. 말로만 소설가 인가했더니 소설가는 소설가인 모양이야."
친구의 칭찬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얼마 전 MBTI 성격에 따라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속한 MBTI 유형이 INFP라서, 첫 글자가 I (내향성)이라서 나는 채용되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어느새 성격을 기준으로 우위를 가리고 서열을 매기는 세상이 되었나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성격을 어떤 직업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타고난 성향과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사 즉흥적인 내가 소설을 쓸 때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내 성향만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 애정, 욕구가 뒤섞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