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공간이 있었다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친구의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항상 어깨가 좋지 않던 내가 양쪽 어깨 수술 후 이삿짐을 싸느라 쩔쩔매고 있을 때, 군말 없이 달려와 짐 싸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탓에 저녁 운동이며 마트 장 보러 갈 때면 어김없이 나를 챙겨주던 친구가 나 때문에 아프다니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줄 생각만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 이제부터는.”
라고 따끔한 충고를 해준다. 고마워서 꼭 밥이라도 사야겠다고 했더니 친구는 이사할 집에 초대해 달라고 했다. 짜장면을 시켜서 조촐한 집들이를 하자면서.
나에게 있어 집은 ‘은둔처’다. 낯선 사람을 초대하지도 않을뿐더러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더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가끔은 시계나 핸드폰을 치워두기도 하고 밤새도록 책을 읽다가 잠들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다. 친구는 내가 속한 세계의 금기를 깨고 드디어 나의 세상으로 한 발을 들이밀 생각인 것 같다.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봄이었다. 동네 책방을 구경하다 친해졌는데 친구가 지금 사는 동네를 알려주었다. 마침 정착할 곳을 찾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노원구에 이사를 했다. 친구는 잊을 만하면 나를 데리고 동네 축제며 책방을 구경시켜주었다. 한동안 낯선 서울이 시리게 느껴졌는데 가까운 데 아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참 든든했었다. 출판사를 열 때, 글을 쓸 때도 친구는 항상 나를 지지해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은평구로 이사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을 꺼냈더니 친구는 이사계획부터 세웠다.
“저 많은 책을 어떻게 옮길까? 이사 갈 집에 책 놓을 곳이 있어?”
지금 사는 집에는 붙박이 책장이 있지만 새집은 그렇지 않다는 말에 친구는 얼굴까지 창백해졌다. 어제는 밤새도록 내 이삿짐을 옮기는 꿈을 꾸었다고 엄살을 피웠다. 이사 갈 집이 작고 낡아서 인테리어 공사가 예상보다 길어진다. 밝은 조명과 책장, 책상 놓을 자리만 있으면 다른 것은 상관없다고 했더니 친구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창문이랑 전기랑 문이랑 수도랑 부엌이랑 다 확인했어야지. 안 되겠다. 공사하는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든가 아님, 나하고 한 번 가보자.”
나는 친구가 엄마 같다고 받아친다. 잔소리는 엄마한테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너는 나중에 초대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걱정 많은 친구는 아직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고, 나는 휴대폰으로 이사할 집 근처 조용한 카페가 있는지 검색한다.
“너도 내 걱정하지 말고 살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일부러 큰소리를 친다. 친구는 잔소리를 멈추고 빙긋 웃는다. 이삿짐 싸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한 손으로 두드리며 나도 따라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