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웠다. 북토크 주인공인 박권 작가님이 겨우 스물다섯 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때, 온다책방 사장님께서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이 한 시간이나 준비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작가님과 함께 해주신 손님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덕분에 약간은 흥분된 기분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 나는 내내 이야기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세상에 가득한 단어와 문장, 이야기 속 이야기, 이야기를 통한 이야기를 읽고 듣고 말했다. 목마르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던 날에도 이야기는 내 곁에 있었다. 소설가란 그런 것이다. 이야기를 주워 담고, 지어내고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집을 짓고 심지어 배경과 세상과 인물을 창조하는 한 마디로 약간은 미친 사람들. 뼛속 깊이 담긴 욕망은 내게 이야기를, 더 나은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조잘대고 나는 타들어갈 것 같은 열망에 들떠 컴퓨터 앞에 앉고는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잘 썼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읽을 때 닥쳐오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왜 이 정도밖에 못 쓰고 있는지, 과연 나는 '쓰는 사람'이 될 자격이 되는지 자괴감으로 슬프던 불면의 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나누지 못했다.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몸 상하기 전에 작가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 고 물으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MBTI가 J로 끝나는 탓인지 '정말 작가들은 그런 고민을 해?' 하고 되묻기도 했다. 다른 작가님들께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는 힘들었다. 결국 나 혼자 안고 가야 할 고민이었다. 나는 그런 고통을 '가슴에 박힌 돌'로 비유하고는 했었다.
충주 여행은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했고, 욕심껏 '탄금대'를 구경하고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다 '온다책방'에 닿았다. 수줍음 많은 사장님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확신이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글 쓰다 힘들었던 이야기,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을 이야기하며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나 혼자만의 '가슴 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한 멀미를 했고, 이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지만 좋은 책을 읽었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다시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야기를 부수고 다시 지어 올리고,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고, 다투고 소멸시키며 나 또한 이야기 속에 녹아간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DNA를 지닌 소소한 인간의 숙명에 따라 숨 쉬듯, 잠자듯, 이야기 속에서 살아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