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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엽 Apr 01. 2019

투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공감과 신념을 찾는 과정이다

Venture Capital과 Corporate Development 경험을 통해 투자나 인수로 인연을 맺은 회사의 숫자를 헤아려보니 약 40여개에 이른다. 한 차례 이상 미팅을 진행한 회사가 2천개 이상이니 검토한 회사 중 투자를 집행한 회사는 2% 내외다. VC들이 어느 정도 비율로 투자를 집행 하는지 찾아보지 않아 이것이 평균에 근접한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VC 또는 CorpDev 심사역들이 만난 회사 대비 매우 제한된 숫자의 회사와만 인연을 맺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심사역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투자한 회사 중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한 회사들이 있는 반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거나 결국 폐업한 회사들도 있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보지 않아 투자를 하지 않은 회사 중에도 나의 비관적인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고 훌륭한 성과를 이어가는 회사들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투자한 후 크게 성공한 회사들 중에도 투자를 결정한 시점에 나와 창업자가 예상했던 방향과 일정과 규모로 성장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결국, 아주 엄격하게 말한다면, 내가 옳다고 믿으며 집행했던 투자와 내가 옳지 않다고 믿으며 함께 하지 않았던 투자는 대부분 어떤 관점에서 틀렸다. 부끄럽지만 이 시간과 과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 나 자신과 현재 나의 역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소속된 회사를 짧게 소개한다. 


예전부터 조금 어색하게 생각했던 것은, 창업가와 스타트업은 심사역을 만나면 본인과 본인이 해결하고 있는 문제와 방법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는데 심사역들은 자기 소개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부분이었다. 보다 효율적인 미팅을 위해 상호간에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에서 한 사람만 본인을 소개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창업가를 만나면 내가 지금까지 어떤 경험을 해왔고, 현재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어떤 것을 결정할 수 있는지 등을 미리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서로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을 돕고, 그래서 보다 생산적인 미팅을 가능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서로 긴장을 풀며 아이스브레이킹까지 가능하다는 점은 덤이다. 


2. 내가 알고 싶은 것과 나의 말하고 질문하는 방식을 미리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경험 상 업무적으로 나를 만난 분들의 나에 대한 판단은 극단적인 호불호로 나뉜다. 성격이 급하고, 궁금한 것을 못 참고, 나의 판단과 느낌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보다 극단적으로 솔직히 전달하는 편인데 이런 방식을 편하고 익숙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우 고통스러워 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경험 상 꽤 진리에 근접한 문장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나 자신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보니 이런 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IR 미팅이나 면접 등을 시작하기 전에 미팅 간 발현될 수 있는 이런 나의 특징들을 미리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제가 미팅(면접) 간에 말씀하시는 내용의 중단을 요청드리거나 갑자기 다른 질문을 드리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대표님(면접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혹여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라고 미리 말하는 식이다. 그 동안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이렇게 미리 양해를 구하기만 해도 상대방이 대화 간 느끼는 당혹감이나 불쾌함이 훨씬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창업자들은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보여드려도 마찬가지로 이런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주셨다.      


3. 내가 공감하지 않음을 틀림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심사역 초년기에는 "대표님 저는 대표님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라던가 "대표님의 접근 방법이 틀린 것 같습니다." 같은 말들을 종종 했다. "대표님이 하시는 사업이 잘 안될 것 같습니다." 같은 말도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런 표현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내가 투자하지 않았으나 너무나 훌륭하게 고객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내가 투자했으나 결국 아쉬운 결과로 이어진 또 다른 스타트업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런 문장들은 감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옳지 않다.


지금의 나는 투자가 옳고 그름의 결정이 아니라 공감과 신념을 쫒는 의사결정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내가 공감하는 문제와 방법론을 추구하는 창업자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를 결정할 뿐 내가 공감하지 않거나 의심한다고 해서 틀린 사업이 아님을 이해한다. 내가 공감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창업자가 선택한 시장과 그 시장에서 고객이 고통스러워 하는 지점과 고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추구하는 방법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어떤 분들은 내 공감이나 믿음과 무관하게 자신이 찾은 문제와 방법론으로 고객의 문제를 훌륭히 해결해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4. 내가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내 앞에 있는 창업자에게 성공과 행운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진심으로. 


어쩔 수 없이 나와 인연을 맺는 회사는 내가 만나는 회사들의 아주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다. 요즘은 내가 공감하지 않거나 의심하는 비즈니스라고 해서 그분들을 응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나는 내가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내 앞에 있는 창업자에게 성공과 행운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냥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미팅에 들어가기 전에 이 문장을 마음 속으로 외치고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질문이나 의견을 드릴 때 이런 마음이 조금은 드러나는 것 같다. 그 마음이라는게 대단한게 아니라 더 창업자의 절박함과 상황을 헤아리려는 무의식적인 노력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질만한 VC나 회사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고 그 회사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기회가 떠오르면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서로 불편하시지 않은 수준에서 연결을 시켜드리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나와 만나는 창업자 뿐만 아니라 내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과거에는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내 판단으로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회사가 예상하지 못한 큰 성공을 하면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 나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그 회사의 장기적인 성공을 믿지 않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고했다. 모두 나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들이다. 


지금은 나와 인연을 맺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와 만났던 모든 창업자와 스타트업의 성공을 응원하고, 그들이 많은 역경과 편견과 냉소를 딛고 결국 고객의 문제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했을 때, 그들의 성공을 격려하고 축하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있게 그러하다. 


앞으로도 내가 만나는 창업자들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그래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창업자를 만나는 일이 즐거운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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