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조금 취한 날의 기억
이거 거의 낚시제목이다. 10년전 겨울의 일이다. 조금 술이 취했을 것이다.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찰나와 영원을 넘나드는 빛의 공기같은 것을 음미했던 것 같다. 그때 적어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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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입구 지하철역에서 저 여인을 만났다. 환영(幻影)같은 피부빛깔.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듯 하지만 어쩌면 자기 안을 향해 내성(內省)하는 듯한 눈이다. 아무 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눈인데도, 내가 마치 그 내성의 눈이 된 듯 그 여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 그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원망스런 눈초리같기도 하고 욕망하는 눈빛같기도 하다. 가만히 되쏘아보면 도도한 무심이 엿보인다. 그러다 다시 가만히 보면 이 여자가 나의 생각을 읽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똑한 코와 코 아래 살짝 들려올라간 듯한 투명한 입술은 약간 벌어져 무엇에 조금 놀란 듯한 기색이다. 깨끗한 눈썹의 라인이 살며시 떨어지면서 귀밑머리의 선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살짝 들었기에 내려다보는 느낌이 난다. 얼굴에 비하면 손은 거칠어 보이는데 턱을 괼까 하다가 문득 멈춘 듯 엉거춤한 자세이다. 손은 하나의 감정이다. 자기에 대한 자부심과 여인다운 내숭이 그쯤에서 살짝 만났다. 저 얼굴과 눈빛은 인간이 그동안 개발한 아름다움의 정수같은 게 아닐까 한다. 사람을 당기는 저 힘있는 유혹, 때로 사람이 시(詩)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