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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주 Apr 07. 2023

내가 이혼한 진짜 이유

이혼은 나 혼자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연애하던 사이의 이별과 혼인관계에 있던 배우자와의 이별은 그 충격의 여파가 남다르다.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오랫동안 삶을 같이 한 세월만큼 서로 갈라야할 것도 많아진다.

작게는 핸드폰 요금제 가족결합에서부터 크게는 살고 있던 집이나 차까지 서로 본인이 갖기 위해 싸우게 된다.

이혼 후의 삶은 그 전보다 더 치열해지니까.

가르고 갈라서 반반이 아니라 서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다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일단 내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이혼 1호가 되었다.

예전 TV프로 중에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개그맨 부부 중엔 이혼한 부부가 없다며 결혼한 개그맨 부부 몇 쌍을 모아두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그래 다들 1호가 될 순 없어서 저렇게 참고 견디는구나. 하면서 나도 참고 또 참고 살았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참아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참아서도 안되고.



이혼을 참아서는 절대 안되는 사유들은 아래와 같다.


1. 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부정행위는 바람을 피웠다거나 성매매를 했다거나 그런 일체의 행위들이 포함된다.

'이성과 식사를 했다.' 는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는 부정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러한 부정행위의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정도와 상황을 참작해서 평가되고 있으니 여러가지 판례들을 찾아보고 해당사항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좋겠다.


> 부정행위의 경우 부정행위를 안날로부터 6개월, 부정행위가 있은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이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지 못하고,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사전에 동의했거나 사후에 용서한 경우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부부의 의무인 동거, 부양, 협조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시부모, 장인,장모 등)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혼인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우자 또는 직계존속으로부터 폭행, 학대, 모욕을 당했을 때.


4.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5.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고 함은 부부간에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부공동 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위 사유들은 법적으로 배우자에게 이혼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정 이혼 사유들이다.

법으로까지 보장하는 이혼사유이니 저 위의 사유들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하루 빨리 이혼을 향해 준비해나가자.

이 경우에는 이혼이 아니라 탈혼(脫婚)에 가깝다.



타인에게 내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이혼을 언제 결심했을까.


결혼하고 어느덧 10년 남짓.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안타깝게도 나의 체념과 포기의 순간들만 떠오른다. 사랑은 결혼을 통해서 깨지는 지독한 환상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봤는데 그 말이 백 번 옳았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라던가 '백마 탄 왕자님' 같은 건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랬다.


결혼하고 처음 몇 년은 괜찮았다. 퇴근하는 그를 기다리면서 저녁상을 준비하고 와이셔츠를 다리는 삶도 다 괜찮았다. 화장실에 젖은 수건을 겹쳐서 걸어놓는 것도, 치약을 중간부터 아무렇게나 짜는 것도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 생각했다. 내가 젖은 수건은 펼쳐서 말려놓고, 내가 치약도 처음부터 다시 짜면 된다고 생각했다.

명절에 결혼 전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던 시골을 가는 것도, 가서 내내 전만 부치다 오는 것도, 김장철에 배추를 한가득 쌓아놓고 '쟤는 도움 안되니까 자게 두자'고 나만 새벽부터 불러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 뒤켠 창고에서 김치를 수십포기씩 담그게 시키는 시어머니도 정말 다 괜찮았다.


괜찮지 않아야 할 것들이 다 괜찮으니까 그 사람은 이것도 괜찮은가? 저것도 괜찮은가? 하면서 조금씩 한계를 테스트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5년 연애 후 결혼하기까지 그 사람이 멀쩡한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 였다. 거짓말 하고 클럽이나 나이트에 가거나 다른여자와 만난 사실을 걸린 적이 많았다. 그런 사람이랑 왜 결혼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순진했다. 믿었다. 결혼하면 바뀔 줄 알았다.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


앞서도 말했다시피 결혼 후 처음 몇 년은 괜찮았다. 여자문제로 나를 자주 속썩였던 그 사람은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려는 듯 거의 모든 모임과 모든 만남에 나를 대동했다. 매시간 전화하고 문자로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다 결혼한지 1년쯤 되었을때 다시 여자문제가 생겼다. 

헬스장 다니면서 친해졌다는 여자 트레이너였다.

거짓말하고 둘이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하고 늦게 들어와서 걸렸다.


멍청하게도 이 때라도 이혼을 했어야 맞다.

그런데 나는 이혼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을 사랑했나? 이른 나이에 자식 결혼시켰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었나?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었나? 그 사람이 '나는 그래도 너 밖에 없어. 이건 진짜 아무 것도 아니고 다 니 오해야'라며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걸 믿었나?


이후에도 아주 가끔 행복하고 아주 자주 불안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제일 멍청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있으면 바뀌겠지'



아니.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상처 받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점 말고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 먼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 건 그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아이를 좋아하는 그 사람이 아이가 있으면 집에도 일찍 일찍 들어오고 아이가 보고 싶어서라도 집에 붙어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여기까지도 지리멸렬하게 이어온 혼인상태를 감히 끊어낼 생각을 못했다.


첫번째는 내가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부모님과 주변의 실망이 두려웠기 때문이고

세번째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혼을 언제 결심했을까.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걸 알게 되었을때?

이 사실을 들킨 남편이 짐을 싸서 집을 나갔을 때?

상간녀 소송을 건 나에게 남편이 폭력과 폭언을 휘둘렀을때?



다 아니었다.


나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혼을 하나씩 준비했다.

나의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지속적인 외도와 정서적인 학대였지만, 내가 진짜로 이혼한 이유는 나는 혼자서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직장을 구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시스템이 적응되어가던 중(그 사람은 여전히 가출 상태로 상간녀와 살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승진하게 되면서 그 사람에게 이제 서류를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군말없이 받아들였고 가정법원에 두 번 출석하여 서류상으로도 이혼이 처리가 되었다.


아주 가끔 생각한다. 내가 서류까지 말끔하게 정리해줘서 이제 더욱 더 부끄러움 같은 거 모르고 살겠구나.

그치만 이내 그 생각도 접어버리고 만다. 혼자 힘으로 살아내야 할 삶이 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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