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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주 Mar 31. 2023

취준일기, 경단 7년 만에 재취업하고 워킹맘 되다.

결혼 전에는 기업 홍보마케팅을 담당하는 마케터였다.

일 하는 게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회사의 불합리한 태도와 주변의 압박 등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만뒀었다.


그리고 결혼 이후 경력단절 기간이 7년.

7년 동안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사실 애매한 경력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구해야할지 몰라 그만둔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정말 아이를 키우느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이 외에 소중한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이 산 5년이었다.

그렇게 5년을 살고 났더니 '나'도 없어졌다는 생각이 너무나 크게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먹고싶은 거', '내가 보고싶은거', '내가 가고싶은거' 이런것들은 다 잊혀지고

'아이가 좋아하는거', '아이와 먹기 좋은거', '아이가 보면 좋은거', '아이가 가면 좋은 거' 이런것들 위주로 살고 있더라.


이런 삶이 당연한건데 의문을 자꾸 품게 되는 내가 싫었고, 너무나 당연하게 이런 것들을 모두 다 감수하고 둘째까지 낳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괴감만 더 커져갔다.



나는 엄마 자격이 없나?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가?

다들 행복해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지?

나는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던걸까?





아이가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이런 고민을 자꾸 하게되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어떤 문제로 법률 상담을 하러 갔다가 우연찮게 잡 오퍼를 받았고, 여기서 이어진 자신감으로 재취업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바짝 준비를 했다.








재취업을 해야겠다.

말이 재취업이지 거의 신입에 가까웠다.

법대를 졸업하고 법무팀 인턴기간을 거쳐 이후에는 홍보마케팅 회사를 전전하다 그만 둔 나의 경력은 나의 멘탈만큼이나 조각나 있었다.


다행히 퇴사 이후에도 프리랜서 개념으로 조금씩 일하면서 온라인 마케팅이나 SNS 쪽 관리 공부를 틈틈히 해두었기에 이 쪽으로 지식이라도 있어서 온라인 마케팅 쪽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면서 이력서를 다시 썼다.


이력서로 쓰자니 정말 이력이 보잘것 없어서 비주얼적으로라도 있어보여야겠기에 이력서는 PPT로 만들어서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구성했다.






시각화의 장점이다.

문장으로 쓰면 별 거 없어보이는 이력들을 디자인해서 꾸며 놓으니 그럴싸해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제출한 포트폴리오는 몇 군데 퇴짜를 맞았고, 본인들 이력서 양식에 맞춰 다시 제출하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 사람인이나 워크넷 등 구직 사이트에서 지원할 경우에는 사이트 내에서 이력서를 작성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포트폴리오 구성이 무용지물이었다. 두둥


아무튼 이렇게 정리를 해놓으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어필하면 좋을지가 한 눈에 보여서 이에 맞춰 다시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처음 취업이 된 회사는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컨설팅 회사였다.

블로그와 유투브 등 온라인 미디어 관리와 컨텐츠 기획 등이 주요 업무였다.


기본급 외 인센티브 등과 다른 조건이 좋았지만 심각하게 좋지 않았던 사내 분위기..

(출근 첫날부터 사장님이 직원 두명과 번갈아가며 고성을 지르며 싸우심...)

출근 여덟시반-퇴근 다섯시반 이지만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려서 아이를 일곱시에 기관에 맡기고 출근 여섯시 반 하원....이 조건들이 너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힘들어서 결국 몇 일 출근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두번째 취업이 된 회사는 전화로 1차 면접을 보고 바로 와줄 수 있냐고 해서 바로 갔다.

집에서 걸어서 오분거리,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였고 온라인 마케팅이 주요 업무였다.


하 그런데...라떼는 말이야....

나 때는 온라인 마케팅이라고 하면 SNS 관리와 페이스북에 브랜드 광고 조금씩 돌리는 정도? 가 다였는데

(심지어 그 시절엔 인스타에 광고도 없던 시절......인스타 페이스북이 먹기 전 시절...)


요새 온라인 마케팅은 빅데이터 기반으로 한 키워드 분석 등과 구글 애널리틱스 등이 필수란다.


정말 웃긴건 면접 보면서 내가 너무 전문가처럼 보여서 저 부분은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뽑았다고....

같이 일하면 재밌을 거 같고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서 그 부분은 당연히 알겠거니 싶어 자세히 물어보지 않고 뽑았다고 한다.


컨텐츠 기획이나 다른 측면에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거 같으니 연봉을 조금 조정하고 회사에서 지원을 해줄테니까 교육을 받으러 다녀라. 까지 제안이 나왔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전문가를 뽑고 싶어했는데 내가 거기까지 역량이 되지 않을 거 같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하고 결국 그만두고 나왔다.


아무튼 추후에 데이터 분석이나 구글애널리틱스 등이 정말 온라인 마케팅에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책도 사고 수업도 듣고 혼자서 공부는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대망의 세번째 취업이 된 회사를 지금 어느덧 4년째 감사한 마음으로 잘 다니고 있다.

주요 업무가 딱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 외의 것들은 내가 공부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보고 있다.

마케팅팀이 꾸려져 있지 않은 회사여서 내가 어떤 걸 제안하든지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느낌으로 북돋아 주는 것도 너무 감사할 따름.


4년 동안 일단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 초기 세팅과 컨텐츠 기획 등을 작업하고 인스타나 블로그에 내가 원하는 타겟층이 볼 수 있도록 키워드를 세팅해서 컨텐츠를 만들어 올려두고 꾸준히 작업했다.

회사 매출은 4년동안 3배 이상 뛰었고, 직원수도 지금은 훨씬 늘어나서 4명에서 10명이 되었다.


기존에 작업되어 있던 브로슈어나 카탈로그의 제품 소개 멘트들이 약간 오래된 느낌의 표현이 많아서 세련된 느낌의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고, 지금은 네이버 스토어 개설과 제품 판매까지 겸하고 있다.


홈페이지도 너무 오래된 느낌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브랜드 느낌으로 리뉴얼하고 기타 마케팅 작업을 하고 있다.



나름 1차면접, 2차 사장님 면접, 적성검사까지 보고 입사한 회사다.



아이가 있다는 것이 일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제약이 되지는 않지만,

출퇴근 시간이라던가, 아이가 아프면 따로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갑자기 원에서 연락이 온다거나 하는 변수가 조금씩 생기기는 한다.


나 역시 초반에 입사가 결정되었는데도 아이 유치원이 코로나로 인해 개학을 하지 않아서 출근 일자를 계속 미뤘었다. 긴급보육이 결정되고 나서야 겨우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아이한테 미안함은 커졌고,

그렇다고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대로 둘 수 없는 날들은 늘어만 갔다.



피곤하다는 아이를 늦잠을 자게 하는 것,

평일에 밤늦게까지 놀고 싶다는 아이를 놀게 두는 것,

코로나로 아직 완벽하게 정상화되지 않은 기관에 아이가 매일 거의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것,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내가 굳이 일을 했어야만 했나?



를 여러모로 생각해보지만 나는 역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살림도 육아도 완벽하게 할 수 없으면 차라리 일을 하면서 마음이라도 놓는 게 나은 사람이었던 거다.



회사에 다니면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점심 먹으면서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것도

퇴근 이후에 일로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해야 하는 것도

피곤한 아침을 이겨내고 아이를 챙겨 출근 하는 것도


지금은 그저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 생활'이 생겼음에 감사한다.





회식이나 워크샵 혹은 예기치 못하게 야근이 잡히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도움요청을 해야 하지만. 일단은 일도 육아도 내 삶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기왕이면 커리어를 잘 쌓아서 온라인 마케팅 관련 전문가가 되어야 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일하게 된 회사는 4년동안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이 분야에서는 거의 넘버원 회사가 되었다.

100% 내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마케팅의 힘을 잘 받아서인 것 같다.



엄마로써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도움이 되고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지금은 참 좋다.

계속해서 이 느낌이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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