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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Mar 16. 2017

'해피 투게더'를 보고

사랑에 보편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이란 것에 보편적인 형태란 없구나- 라고 느끼게 된 영화가 몇 있다. 이름을 말하자면 '안나와의 나흘 밤', '그녀에게', 그리고 이 영화, '해피 투게더'. 세 영화가 각자 느낌이 좀 다른데, 해피 투게더에서는 동성애의 평범성과 비뚤어진 인간들의 비뚤어진 방식의 연애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내겐 잊혀질 수 없는 영화 중에 하나다.

 보영과 아휘는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를 기점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이미지들과 내레이션이 이끌어가는 서사가 익숙하다. 언젠가 보았던 이과수 폭포에 가보겠다며 홍콩의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그들은, 이과수 폭포는커녕 길을 잃은 채 서로와 이별한다. 그 뒤 아휘는 탱고바에서 일하며 홍콩으로 돌아갈 여비를 모으고, 보영은 그런 아휘에게 불쑥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처음에 아휘는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말을 거절하지만, 다시 돌아온 보영의 다친 몸과 손을 보고는 그를 자신의 집에 거둬들인다. 

 다시 시작한 연애는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이과수에 가보자고 한 약속은 언젠가 지켜질 수 있을까? 헤어진 연인의 역사에서 보통 지난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우린 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보통 이별했던 연인들이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이전에 헤어졌던 이유와 똑같은 사연으로 헤어지곤 한다. 보영과 아휘는 어떨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가고자 했던 이과수 폭포에 있다. 이과수 폭포는 그들의 바람, 혹은 욕망, 또는 영원, 아니면 그들의 사랑의 완결 같은 것의 드러난 메타포다. 그들의 머리맡에는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스탠드가 계속해서 돌고 있지만, 그들은 끝내 그곳에 함께 다다르지 못한다. 때때로 어떤 영화들에서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 성취되지 못하고 좌절되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좌절을 보여준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방식에는 많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들은 왜 서로 상처 입히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 사랑이 왜 같은 방식으로 끝장나버려야만 하는가. 아휘는 말한다. 사실 보영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다고.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서로를 구속하고 상처 주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존재들이 있다. 보영의 비틀린 무언가는 아휘를 계속해서 괴롭히지만, 아휘는 그의 다친 손을 핑계로 그를 놔주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보영에게 아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휘에게 보영이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손이 나아가는 동안 보영은 계속해서 아휘에게 벗어나려 하고 보영은 그런 그를 붙잡는다. 수북이 쌓인 담배와 숨겨둔 여권이 마음 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끝난 사랑만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전부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진 않았을 것이다. 끝난 사랑의 여과 없는 잔해들을 덤덤하게 보여주기에, 그리고 그것들을 아름답게 그려내기에 이 영화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쟁취한다. 중반 이후 등장한 소장이 세계의 끝에 아휘의 마음을 놓고 오는 장면, 아휘가 혼자 결국 이과수 폭포에 닿아 보영을 그리워하는 장면, 그리고 결국 보영을 놓은 아휘가 마지막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누군가를 생각하는 장면들은 참 아름답다.


+ 탱고가 주를 이루는 OST들이 멋졌다.
++ 아- 양조위와 장국영, 장국영과 양조위, 이 남자들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들을 다 했다. 양조위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장국영이 아니었더라면 안됐다. 
+++ 택시에 앉아 아휘의 어깨에 기대는 보영, 함께 탱고를 연습하는 아휘와 보영, 주먹을 날리면서도 서로의 슬픔이 느껴지는 아휘와 보영, 인상 깊은 장면은 수도 없이 많다.
++++ 왕가위 감독은 보여질 수 없는 감정들을 물질화하는 것에 참 능숙하다. 그런 장면들마다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도 깊게 담겨있어서 때론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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