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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나비 Dec 08. 2022

경험하지 않으면 몰랐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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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않으면 몰랐을 일이 제목이지만, 세상은 정말이지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알고 싶어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입으로 나누어 준 이야기보다는 이름 아래, 글로 책으로 남겨 준 이야기들은 그보다 훨씬 믿음직하다. 책을 읽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결국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장인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하지 못한 경험은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고 기회가 되면 꼭 해봐야 할 것들이다.



 너무 어렸을 때 나는 엄마를 이해해버렸다. 이해한다고 스스로 믿고 그녀와의 대화 창구를 막아버렸다. 귀를 막고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그랬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무조건 믿고 따르는 쪽을 택해 버렸다. 내가 그렇게 해버린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세상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마음을 닫았다. 그 당시 나를, 엄마에 의해 허용된 것들로 가득 채워버렸더니 내 삶에서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거나 철이 들었더라면 난 당장 가출이라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인증 편향이라는 것에 빠져서 나를 망쳤던 모든 것들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나는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내가 구하는 진실이 어디에도 있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엔 진실이 있을 리 없다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일단 그렇게 믿고 나니 세상 사는 일이 참 수월해졌다. 바라보지 않고 눈을 맞추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곳이 곧 내게 안전한 곳이었으니 내 삶에 성가신 것들은 하나도 필요 없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관련된 경험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별로 경험할 것이 없어진다. 처음엔 답답하고 갇힌 듯한 느낌에 고통스럽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틀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다른 것들을 꿈꾸지 않게 된다. 그러니 특정한 무엇을 경험하고 안 하고 가 인생에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는 상태로 살아지게 된다. 또 그런 상태에서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녀들 스스로 부모를 닮거나, 아니면 부모가 자녀들을 그렇도록 살도록 강요하는 게 당연스레 이어진다.  



참으로 끔찍한 악순환이다. 스스로 나를 바라보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나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가 나와 비슷한 눈을 가지고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을 때 경악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 핏줄이 갇혀 있는 걸 알고 나니 꺼내 주고 싶은 맘이 절로 생겼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일을 경험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다면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상처를 봉합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너의 상처를 보여주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사람들 안에서 치유하라고, 절대 도망치지 말라고. 한 번 도망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겁한 삶이 시작된다고. 이미 도망이 시작된 상태에선 누군가 널 도와줄 수 없으니 반드시 스스로 너의 길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렇다. 나의 10대에게 되돌아가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엉뚱한 얘기로 흘러가 또 많은 원망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정작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리고 비교적 간단하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은 글쓰기다. 1500자를 써야 하건 2000자를 써야 하건 모든 글은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일단 마음먹고 연필이든 키보드든, 꾹꾹 눌러쓰고 두드리고 있으면 반드시 완성된다. 이건 정말 시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시작하면 누구나 완성할 수 있다. 그러니 차이는 시작하느냐 마느냐에 있을 뿐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맞다. 천오 백자 글도 한 문장부터. 그렇게 이루어지는 거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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