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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Oct 17. 2021

물을 내리면서

대변이 기분좋게 밀고 나간 후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으면서 일어나 물을 내렸다.

내 몸에서 나온 대변을 확인할지 말지를 그녀는 매번 결정한다. 일상은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습관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무념의 표정으로 자신의 배설물을 바라보지만 대부분은 보지 않고 물을 내려버린다.

하지만 적어도 20년 동안은 그녀는 변기 안을 보지 않고 물을 내렸다. 움베르토 에코는 한 소설에서 인간은 아무리 친해도 자신의 배설물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독특한 종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낸 고유한 생산물로 동물은 자신을 표시하지만, 사람은 벗은 몸뚱아리, 심지어 자신은 볼 수없는 성기의 부분까지도 보여주면서도 배설물 만큼은 혼자 즐긴다.

 엄마에게 배설물을 맡기던 갓난 아기는 배변 훈련할 때가 되면 변기 속에 사라지는 자신의 것에 애도를 표한다. 발달 장애가 있는 그녀의 조카는 어린 시절 배변 훈련이 유난히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매번 어른들이 함께 변기 속의 똥에게 함께 인사를 나누고서야 물을 내릴 수 있었다. 자끄 타티의 유쾌한 영화 <나의 삼촌>에서 아이들은 모래 구덩이를 파고 똥을 누는 삼촌 뒤에서 몰래 삽을 갖다 대고는 그가 몸을 을으키는 동안 똥이 얹어진 삽을 재빨리 뺀다. 어리 둥절한 삼촌의 표정을 보고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거기 있어야 할 내 것,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는 내 것. 어린 아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내 것인지 알고 있다.

 그녀가 날마다 보지 않기로 한 그것은 남에게 표현 못한 감정과도 같았다. 타당화나 승인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사라진. 그리고 그것을 미워하거나 견디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일반의 시선 앞에서 혐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발견한 타인의 그것을 보고, 자신의 것을 혐오하기 시작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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