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집에 있다가 없게 되면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그 아이는 집에 살 때도 거의 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아침에는 늦도록 자고 저녁만 되면 어딜 나가 밤새도록 놀다 내가 도저히 깰 수 없는 시간에 들어왔다. 무엇을 먹이고 싶어도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음식을 해달라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해놓고 아이가 어느 때고 퍼먹고 나간 흔적을 보며 흐뭇해 했다.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너무 변해서 원래 그 아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 음식을 해주는 거 말고 내가 뭘 해줬었나 별로 기억이 안난다. 다른 엄마들처럼 피씨방에 가있는 애를 잡아 오지도 않았고, 친구 엄마들이 모여 노는 자리에도 잘 안나갔다. 사실 아이도 나도 눈에 띄는 편이었다. 아이들은 미성숙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길 때 나는 내 아이를 먼저 보호하고 방어막이 되어 주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상냥한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자기 자식 일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눈에 불을 키는 두 얼굴의 엄마들이 무서워 나는 그런 자리들을 슬슬 피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몸서리치게 속상한 일들이 있다. 그때 아이가 다그치는 엄마 앞에서 혼나고 와서는 "엄마 내가 그렇게 기분이 나빠? 00이 엄마가 나보고 너만 보면 기분이 나쁘다고 했어" 라고 말할 때도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 엉엉 울기만 했다. 아니 나랑 얘기가 통하는 비슷한 소심한 엄마한테 전화해서 그 엄마 욕만 했던 거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불의 앞에서 남들보다 겁없이 덤비는 또라이 짓도 잘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무능했다. 나는 용기도 없고 잘 못한 일을 어느 정도 덤덤하게 인정해야 할지 몰랐다. 잘못했을 때는 지나치게 쩔쩔 매고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과한 제스춰를 보였다. 나중에는 그게 상대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도 헷갈렸다. 그니까 어쩌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심정이니까 상대가 마음을 안 풀어주면 정말 마음이 상할 지도 모르는 상태까지 밀고 나갔다.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미안한 건 아니었다. 그럴 때 마다 가장 냉담한 내가 뒤에서 과하게 미안해하는 나에게 너 그 정도는 아니잖아 하고 차갑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남한테 잘 못할 일을 아예 안하는 걸로 나를 고통에 빠뜨리지 않고 살았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비정하기도 하고 이기적일 때도 있다. 분노 때문에 자기 조절이 안 되기도 한다. 크기나 힘의 차이로 쉽게 강자와 약자를 가르고 싶은 엄마들에게 우리 아들을 똑같이 미성숙했지만 나쁜 애로 지목되었다. 엄마들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우리 애를 무서워했다. 그때 마다 나는 아이를 감싸안고 무조건 참아야 돼라고만 했다. 아이를 위해 뻔뻔해질 수 없는 모성은 아무 쓸데가 없다. 작고 힘이 없어서 자기 차례의 공을 뻥 차버리는 친구에게 왜 그래 라고 하며 쓰러져 우는 걸 멀리서 보고 울화통이 터졌던 큰 애때랑은 반대의 일들이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아이들에게 가서 (그 엄마처럼!) 내 애 입장만 대변하고 무서운 얼굴로 주의를 주지 못했다. 나는 어떤 아이들에게도 무서운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론 내 아일들에게만 무서운 엄마였을지 모르겠다.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아이에게 미안했던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기억은 참 신기한 것이라서 한 부분을 닦아내면 다른 부분에 낀 때가 또 보인다.
그러나 내가 빠져있는 곳이 정말 원하는 곳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나는 후회를 원한 것은 아니다.
"그때 너에게 네게 필요했을 그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그런데 더 중요한 말이 있어. 엄마는 어쩌면 영원히 때를 놓칠지도 몰라. 늘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면 이번에도 네가 받는 건 미안함 뿐이겠지. 그래서 미안하지 않을 용기를 내려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