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갠 Dec 20. 2017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해결

자살의 이유와 우울증의 원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2017년 12월 19일 자 일본 아침 뉴스에 샤이니의 ‘종현’군이 자살했다는 게 보도되었다.

사실 아이돌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샤이니라는 그룹은 알고 있어도, 종현이라는 분은 어떤 성격의 멤버였으며, 어떤 캐릭터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세상의 주목과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또다시 조명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뉴스를 계기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자살’의 이유와 ‘우울증’의 원인이 뭘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전에 ‘세상의 주목과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리는’이라고 글을 썼을 때,

내심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왜 우울해?’라는 느낌으로 이분법적인 마인드를 표출하였음에 스스로 놀랐다.


‘부와 명예가 있으면 행복하다’에 반하여, ‘행복하지만은 않다’, ‘행복의 지표는 부와 명예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늘 갖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이러한 문장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일 모든 언론사와 미디어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기사와 키워드, 이슈로 장사하는 콘텐츠들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물들어 버린듯한 착각이 들었다. 

라고 변명해 본다.




다시 출근길에서 느낀 주제로 돌아가서,

‘자살'의 이유‘우울증’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원 수업 중 교수님이 존재 가치가 낮아짐과 이 세상에서 쓸모없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고, 

그 감정과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 '자살충동'이 생긴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존재 가치가 왜 낮아지고, 왜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없다는 기분을 느끼게 될까, 궁금했다.

결국 존재에 대한 이유와 쓸모 있음을 느끼게 된다면 우울이 극에 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 아닌가.



예전에 우연히 티비에서 보았던 ‘어쩌다 어른(이하, 콘텐츠 일부 인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인의 관계성과 주체성’에 대한 허태균 님의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관계성’이란 타인과의 관계적 맥락에 의존하는 정도라고 해석하면 좋을 것 같고,

‘주체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성향의 정도라고 풀이하면 될 것 같다.


허태균 님은 서양의 ‘인지부조화 이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비교하였다.

쉽게 말하면 줏대가 있냐(인지부조화-서양인), 없냐(관계성-한국인)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기분에 따라 개인의 화법이 달라지느냐(한국인), 아니냐(서양인)에 대한 비교였다.


동양과 서양의 사상 차이로서 동양은 배경을 보고, 서양은 중심의 사물을 보는 성향과도 유사함을 느꼈다.

한국인은 내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게 바뀌는 민족이다.

맞춰줌이 예의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긴 하다.


다만, 한국이 관계주의로 형성되어 있는 것과 다르게, 일본은 집단주의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강의를 보고 나서 그제야 일본인들의 행동이 쉬이 납득이 가는 속이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진지함이 결여된 편인 나는 한국에서 회사 다니던 때처럼 행동할 때가 많은데,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직업의식이나 사명감이 결여되어 보일 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되었다.


여자 화장실에 남성이 있어도, 그게 청소를 하는 사람이면 그러려니 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직업과 직종, 위치로 분류한다.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단주의 민족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현재 일본에 살면서 실감하고 있다.


여하튼 일본의 자살률도 만만치가 않은 편인데(OECD 국가 중 3위),

2010년까지 리먼 사태(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여파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경제가 좋지 않았던 일본이 7년 동안 자살률 하락세를 기록하면서 일본보다는 한국의 자살이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의 불안한 경제 속에서 일본은 리먼 사태 이후 회복을 하는 듯하나(경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라 개인적인 느낌을 위주로 하는 얘기), 한국은 경제난 속에서도 유독 강한 관계성과 주체성을 갖고 있어 우울함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 원인을 유추해본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이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뼛속깊이 박혀있는 민족성은 쉽사리 바뀌기 힘들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유독 강하고, 주인공이 되기를 '한턱 쏘기'로 해야 하며,

부를 기준으로 계층을 분류하여 일정 부류에 속하지 못하면 도태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 윗세대들이 열심히 노~오~력해서 일구어놓은 민족성의 늪에서,


나 스스로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회가 돼버렸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고,

주변에서도 각자가 주인공이 되려고 보여주기식 행복감을 표출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증이 극에 달해, 자살충동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면서 욜로녀도 우울해지려고 한다.)




자기 계발서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부터 발생하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부정하라고 하는 구절이 생각난다.


유온리리브원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오래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져,


1.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2. 모든 인간관계에게 '받기(take)'를 원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주기(give)'를 하려고 하며,

3. 남편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정을 안해줄 경우, 화를 내다가도 금새 [미움받을 용기]를 떠올리면서 '인정욕구의 부정'을 실천하고 있으며,

4. 누군가와 비교하여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려 하며,

5. 회사생활은 그저 '큰 소꿉놀이'라고 생각을 하고, 주변 눈치를 안보려고 하고 있으며,

6.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를 되도록 많이 흥얼거리며


지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에서 한 달 생활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