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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Mar 18. 2018

간병 시작, 환자 가족의 마음가짐.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이 글이 필요할 어딘가의 당신을 위해

안 팔릴 게 빤히 보여서 상업 블로그엔 쓰지 못하고 끄적거려 보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침대에서 숨죽여 울며 미친 사람처럼 인터넷을 검색할 어딘가의 당신에게, 누군가의 가족에게 필요할 이야기.


이 글을 찾아 읽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소중한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겠지요. 간병을 시작한 초기이거나 간병을 시작하는 순간일 겁니다.

 지식인의 쓰레기 같은 병원 광고들을 모조리 찾아 읽다 지쳐서 (그 와중에 솔깃해서 몇 개는 적어 놓았을 수도 있겠네요) 검색어를 변경하고 변경하고 변경하다가 이 글까지 찾아들어오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의학 지식도 없고, 돈도 많지 않은 그저 평범한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대단히 숭고한 사랑 같은 건 절대 없는 우리가 이 끔찍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아참, 이건 그저 6년을 환자 가족으로 보낸 뒤, 완치 판정을 받았던. 그리곤 완치 판정 이후 또다시 시작된 500일을 환자 가족 중 하나로 버텨 온 내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나의 모든 행동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정답은 아니에요. 그치만 적어도, 여태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내 마음가짐 정리 글 정도는 될 겁니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되새기려고 합니다.


앞으로 당신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아픈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술을 많이 마셔서? 식습관이 안 좋아서? 내가 덕을 못 쌓아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벌을 받았다?


아픈 것은 그저 우리가 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도, 명확하게 원인이 드러나는 사실도 아닙니다. 자책하지도, 환자를 책망하지도 마세요.

아픈 게 누군가의 못된 마음 때문이라면 지금 떵떵거리며 잘 사는 저 사람들은 뭔가요. 그리고 그렇게 착하지만 우리 곁을 빨리 떠나가야 했던 사람들은요.


그냥 운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환자에게도 꼭 상기시켜 줘야 합니다. 당신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벌 받은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요. 아, 왜 하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한 생각도 접어두기로 해요.

덧붙여 하나만 욕심내자면, 아주 나쁜 누군가에게 암에 걸려 뒤졌으면 좋겠다던가, 열 받는 상황을 앞두고 암 걸릴 거 같다던가 하는 말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아프다는 건 누군가에게 천벌을 내리기 위해 선택하는 불행의 대명사는 아니니까요.


우리에겐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어요. 지나간 일을 원망하기엔 앞으로의 한 순간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 운이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가장 억울한 말이지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해요.


두 번째, 가능한 환자 앞에서 울지 마십시오. 우리 서로 무거워지지 말아요.


아무리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도, 환자 앞에서 그리고 가족들끼리도 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사실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여유가 없을 겁니다. 지금은 서로를 격려하고 있달지라도, 긴 시간 서로의 슬픔을 업고 가기는 힘들 겁니다. 지하철에서 울어도 좋고, 교회에서 울어도 좋고, 혼자 울어도 좋습니다.  가능한 가족들, 서로에게는 기대지 마세요.  


세 번째, 일상생활을 정리하지 마십시오. 특히 직장!


우리는 생각보다도 더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할 수 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보다 돈 걱정 먼저 하는 일은 최대한 피합시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돈이 (그것도 많이) 필요하며, 간병에는 생각보다 돈과 시간과 마음이 더 많이 듭니다. 특히나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두 번째 투병이라면 보험료까지 지원받지 못한 채 온전히 감당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본인 때문에 가족이 일상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본 환자 자신의 무거운 마음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가족과 일정을 맞춰서 교대로 나가서 노세요. 가족이 아픈데 내가 놀아도 되나 생각이 들 수 있어요. 버티려면 오래가려면 쉬어도 됩니다. 웃어도 됩니다. 백 미터 달리기 아닙니다. 요령껏 페이스 조절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끝까지, 버티세요.


마지막, 포기하지 마세요.

숭고한 마음가짐으로 버틸 생각 하지 마시고, 대단한 신화 이룩해낼 생각은 처음부터 버리시고,

그냥 포기하지 마세요. 그냥, 절대로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힘들 당신에게 설교하듯 늘어놓아 미안합니다. 이 글은 아마도 1년 뒤의 나에게, 그리고 어쩌면 내일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싶었는데, 아무도 해 주지 않았거든요.


누군가 나 좀 안아줬으면 하는 순간이 곧 찾아올거예요. 그 때 저금하듯 기억을 꺼낼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 한 번만 꽉 안아달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다시 아픈 지 500일을 꽉 채웠습니다. 나는 내가 절대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쓰는 글입니다. 그래서 더 글이 짜임새가 없을 겁니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이 얄팍한 글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욕 한 번 하시고, 잊어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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