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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Jun 11. 2020

서비스 종료

   회자정리(會者定離) 불자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말이다. 만남엔 필연적으로 헤어짐이 동반된다는 것. 그것이 언제든 말이다. 


   2020년 6월 11일 오늘자로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이 서비스 종료되었다. 내가 게임업계에 들어와 처음으로 참여하였던 게임이었다. 첫 게임, 첫 서비스 종료. 이 글은 그 첫 경험에 대한 심경문 정도가 되겠다.


   게임 개발자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의 서비스 종료를 맞이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영원 존속 가능한 게임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개발자 역시 평생 동안 하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은 않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러할 것이다.

   지금 막연히 드는 생각은 희망찬 개발과정에서 그것을 떠올리는 개발자가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딱히 누군가에게 떠벌리고 다닌 적은 없지만, 회자정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듯 나는 모든 만남에 헤어짐을 그려보곤 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스쳐가는 인연이든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정말 당연한 것인데 만드는 게임에 대해서는 그것을 대입시키지 못했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이 사람들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것과 달라서인 것도 있겠고, 조금은 급작스럽게 종료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으로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헤어짐이기에 가슴 한편이 많이 저리다. 책과는 달리 언젠가 사라질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묵직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 이상으로 내 글을 아껴준 고마운 유저분들이 영상으로 남겨주시긴 했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말 그대로 영상물이니까.


   다른 매체들과 구별되는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상호작용성에 있다. 일방적으로 제작자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소설, 영상물과는 다르게 게임은 유저가 스스로 캐릭터를 조종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가령 1 VS 100의 싸움을 보이는 마초의 무쌍 영상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게임은 유저가 직접 그 마초를 컨트롤하거나 그 마초를 적군으로 맞이하여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는 그 상호작용성 안에 있고, 그것은 곧 그 상호작용성을 잃게 되는 순간 게임의 의미가 크게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유저들이 서버 종료 이후 연의를 즐길 수 있는 버전을 남겨달라 요구하는 이유 역시 이것에 있다.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은 게임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니까. 간단히 말해 게임은 서비스가 종료되는 순간, 다시는 그 본연의 재미를 즐길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종영 이후에도 다시 볼 수 있는 드라마, 절판 이후에도 읽을 수 있는 도서. 다른 매체와의 차이점이다. 게임에 있어 서비스 종료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죽음과 유사한 점이 많다. 


   구구절절 쓰긴 했지만, 모든 이별이 그러했듯 이 역시 언젠간 무던하게 보내게 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래전 즐겼으나 사라졌던 게임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듯 말이다. 단순히 즐긴 것과는 사뭇 다르기에, 다른 게임들보다는 조금 더 저리겠지만.


   통보를 받고 수개월이 지났으니 적당히 삭힐만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오늘 스며오는 감정은 그저 하염없고, 속절없 것들 뿐이다. 알고 있어도 피할 수 없는 것들. 이별을 직감하는 날과 이별을 마주하는 날이 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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