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올해 생신 선물은 뭘로 상납할까요"
"그 요즘 말 많은 게 있지 않냐. 그래, 그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선이 없는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이어폰이요?"
"그래, 중세 유럽 귀족의 이름처럼 복잡한 그거 말이다. 그거나 하나 주면 좋겠구나."
"갑자기 그건 왜요? 아버지 노래도 잘 안 들으시잖아요."
"충동이다."
"환갑도 넘으신 분이 무슨 충동이 그렇게 무궁무진해요. 이번엔 또 뭔데요."
"네가 몰라도 되는 충동이다."
"말씀해주시면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게요."
"…어릴 적부터 너는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아 문제였지."
"포기하지 않고 설명해준 아버지의 과실도 없진 않죠."
"…어젯밤에 비가 내렸잖냐. 베란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그… 소음 줄여주는 이어폰을 끼면 빗소리는 어떻게 들릴지 말이다."
"갑자기요?"
"그래. 빗소리도 소음으로 인식하는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지더구나."
"고작 그런 충동에 30만 원 태우긴 아까운 것 같은데요."
"내 돈이었으면 그랬겠지."
"…그래서야 제가 선물하고 싶겠어요?"
"아들아, 나는 네가 태어나던 날부터 단 한순간도 너를 의심한 적이 없단다."
"이번에 처음으로 해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그 무선 연결인지 하는 거는 비가 와도 상관없는 거냐? 비 오면 인터넷이 느려지고 그랬던 것 같은데."
"불운하게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공학도가 아니네요, 제가. 뭐, 그래도 보통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연결될 텐데, 상관없지 않을까요?"
"직장인이라는 놈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확실하지 않은 대답은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고 그렇게 말해줬는데."
"저를 의심한 적 없으시다면서요."
"…그나저나, 네 여자친구는 집에 한 번 데리고 오겠다더니 식장에서 만나게 할 예정인 거냐?"
"아, 그게 최근에 좀 다퉈서요.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 비 오는 날 그 선 없는 이어폰이 작동이 잘 안 되면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갑자기요?"
"첫 번째는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그게 지금 왜 중요한 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요?"
"기청제를 지내는 것이지."
"…그러니까 화가 풀리길 기원해라, 뭐 그런 뜻인가요?"
"아니,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다."
"…그런데, 아버지. 기청제를 지내다 정말 비가 멎으면 아까 말한 빗소리는 못 들으실 텐데요."
"아들아, 비는 다시 내리기 마련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이는 건 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