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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Mar 12. 2024

좋았다! 나의 하루

죄 없는 남편

 

 내 삶에 감동적인 영향을 끼친 두 여인을 꼽자면 엄마와 시어머니였다. 왜 과거시제인가 하면, 결혼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특히 그분 -시어머니에 대해선 이즈음 최소한의 애정 조차 드리기가 어려워 놓아 버렸다.


 만날 때마다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게 일어났다. 말씀이 아닌 일방적인 언어 습관이 어처구니없고, 당최 어찌 저리도 당신이 낳은 자식만 중요할까 싶다. 두어 달 전 손윗동서가 갑자기 쓰러졌고 뇌출혈로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배우자인 시숙과 조카 셋은 어찌 견뎌오고 있는지 딱하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일말의 염려가 없으셨다. 교장으로 퇴직한 당신 아들이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만 걱정이셨다. 급기야 박사학위까지 딴 조카가 서울로 취직하여 독립한 게 불만이다. 손녀가 제 아버지 밥을 챙겼으면 하는 이유다. 손자는 아들이라 예외인 모양이다.


  나의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맛집이라고 모셔간 식당은 정말이지 맛이 지독히도 없다. 동태해물찜과 동태탕은 간도 맞지 않았고, 연신 계속되는 시모의 동서 이야기에 화가 치밀어 나는 눈으로 쏘아보는 게 뭔지를 시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나는 응급 상황의 며느리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냐고 말 안 되는 아무 말 대잔치까지 벌였다. 표정으로 보아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시다.


 수십 년 동안 이 일 직전까지는 시댁 방문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어쩌면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는지?” “어쩌면 저렇게 나이 들 수가 있는지?” “어쩌면 저리도 며느리를  향한 상식 이하의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사는지?” 성토했을 텐데, 이 사건 이후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느껴 침묵했다. 남편은 그녀의 아들이었을 뿐 전혀 다른 존재다. 지금도 당신 자식에 대한 사랑만 지극한 노모 때문에 남편이 내게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없다. 집으로 돌아오던 칠흑의 밤,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었고, 가벼운 수다도 이어나갔다.


겨울 막바지에 이르니 두더지들이 정원 여러 곳의 흙을 파내 꽃들의 새 순 위로 쌓아 놓거나 야트막한 돌담 곳곳을 무너뜨리고 있다. 다음날 또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의 열기를 안고 뒤 뜰에 서서 한숨을 쉬고 있던 와중에 요 사진 속 다람쥐와 눈이 마주쳤다. 산책로에 널려있는 밤을 입에 물고는 기와 담벼락 속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는 풍경이다. “야! 너 혹시 나에게 눈으로 뭐 하는 거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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